경제학 분야에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돼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경제학자로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제가 이렇게 훌륭한 상을 받은 것은 지난 20년간 진행한 한국 경제 실증연구 성과를 인정해주신 것이며, 또 저와 같은 실증연구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보기술(IT), 디지털 플랫폼, 인공지능 같은 기술혁신이 산업과 경제에 어떠한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는가에 대해 대규모 마이크로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해온 실증경제학자다.
경제학은 2000년 이전에는 이론 분야를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대규모 데이터와 컴퓨팅 능력을 바탕으로 경제 주체인 모든 기업과 가구의 시장에서의 행태 분석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실증경제학이 빠르게 발전했다. 이전에도 한국인 실증경제학자는 있었지만, 대규모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한 한국 연구자로는 첫 번째 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은 연구자다.2001년 미국 뉴욕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처음에는 주로 미국 경제를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IT가 확산한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는 유럽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빠른 성장을 해왔다. 이러한 거시경제적인 성과의 차이를 설명하는 기업과 시장의 미시적 메커니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미국 경제의 높은 성과는 미국 기업이 유럽보다 IT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기존 견해였다. 이에 대해 공저자들과 함께 IT 도입 이후 기업 간 성과의 이질성이 커지고, 이 과정에서 자원이 더 생산적인 기업으로 재배분돼 산업 전체의 생산성이 향상하는 메커니즘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IT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자원 재배분을 뒷받침하는 시장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정책적 함의를 제시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 사업체와 기업 수준의 마이크로 데이터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거시경제이론의 ‘미시적 기반’(micro foundation)을 구축해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를 보다 현실적이고 엄밀하게 설명하는 이론 및 구조모형이 빠르게 발전했다. 하지만 2006년 귀국 이후 한국은 이 부분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를 설명하는 이론모형을 구축하고 기업 및 산업 정책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체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통계청의 다양한 전수 사업체 결합 자료를 국내 최초로 연구에 이용했다. 미국 및 유럽과는 다른 한국 기업의 진입, 성장, 퇴출 과정의 기업동학(firm dynamics)을 분석해 한국 경제의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성장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기초 연구를 꾸준하게 했다.
이러한 대규모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에는 통계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연구를 위해 대학으로는 최초로 2014년 서강대에 통계청 데이터센터를 구축했고, 이후 타대학에도 센터가 설립되면서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한 실증연구가 더욱 빠르게 확산했다.
특히 나는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업에 주목해왔다. 소매유통업 현대화가 지역 고용과 생산성에 미친 긍정적 효과, 온라인 쇼핑 확산이 도시와 비도시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상반된 충격 등은 정책적 논의에도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성과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공유숙박, 음식배달앱 등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이 한국 서비스업에 가져올 구조적 변화를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
돌아보면 연구자의 길은 외롭고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현실을 정밀하게 분석해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많은 국내외 동료 연구자와 학문적으로 교류하고, 후배 연구자들이 한국 경제 실증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기쁨과 보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연구자로서의 길을 응원해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층 더 정진해,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 전현배 교수는
△1991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1995년 서울대 경제학 석사
△2001년 미국 뉴욕대 경제학 박사
△2001~2006년 뉴욕시립대 조교수
△2006~2011년 서강대 경제학부 부교수
△2011년 청람상
△2020 일본 히토쓰바시대 경제연구소 방문교수
△2023년~ 공정거래위원회 정책자문위원
△2025년 근정포장(공정거래정책)
△2011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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