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3대 경제대국의 재정 파탄이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미국마저 예산안 처리가 불발로 그치면서 셧다운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웃 일본에서도 변수가 있긴 하지만 소득세 감면에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표방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조만간 출범할 것이라는 점이다. 양출제입의 원칙상 트럼프 정부의 첫 살림살이가 문제되는 것은 세수보다 세출 부문이다. 토마 피케티 공식대로 성장률(g)이 이자율(r)보다 높으면 빚내서 더 쓰더라도 재정적자와 국가부도 우려는 없다는 인식을 토대로 짜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추종자로 알려진 워런 모슬러가 창시한 현대통화이론과 같은 논리다.
세수 부문에서는 지나치게 포퓰리즘과 근린 궁핍화 관점에서 짜져 있는 것도 문제다. 표심과 직결되는 소득세와 법인세는 감면해 미국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대신 대미 상품거래는 관세, 대미 투자는 준조세에 해당하는 수탈적 성과 배분, 사람의 이동은 높은 비자 수수료 등으로 다른 국가에 전가해 보전하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모든 근린 궁핍화 수단은 단기적으로 상대국에 피해를 줄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부과국이 더 큰 피해를 본다. 미국과 같은 수입국은 관세 부과에 따라 ‘자국으로의 대체효과’보다 ‘타국으로의 다변화 효과’가 월등히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본 거래에 있어 토빈세 부과도 ‘나비효과’보다 ‘잔물결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 미국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 확률이 높다.
돈로(DonRoe)주의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폐쇄 정치로 개방 부문을 빗장으로 걸어 잠그면 트럼프 정부가 구상 중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달성은 더 멀어질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GATT(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WTO(세계무역기구)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무역 질서, IMF(국제통화기금)와 WB(세계은행)를 양대 축으로 하는 브레턴우즈 체제에 의해 지탱해 왔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내놓은 자리를 중국이 빠르게 무임승차하고 있는 점이다. 지난 9월 초 전승절을 계기로 러시아, 북한 간의 전통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재구축해 놓았다. 이런 기반 위에 탈미국과 탈달러화를 외치고 미국을 떠나는 민주주의 국가까지 안으면 중국은 의외로 빨리 팍스 시니카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미국 경제 자체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예산안을 추진하면 ‘재정적자-포퓰리즘 악순환 고리(deficit-populism deep loop)’에 처할 확률이 높다. 2012년부터 세계 3대 평가사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켜 왔다. 트럼프 정부가 구상 중인 예산안을 원안대로 추진하면 신용등급을 추가 강등시킬 수 있다고 경고해 놓은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코프 교수는 단도직입적으로 삶은 개구리 증후군의 교훈을 되새길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25도 비이커에 넣은 개구리가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모르고 즐기다 보면 결국은 죽다는 것이다. 2026 예산안과 동맹국에 전가한 근린 궁립화 정책을 하루빨리 철회해야 한다는 경고다.
프랑스, 미국에 이어 일본이 정치적으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결별 선언으로 첫 여성 총리가 이끄는 다카이치 정부 출범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막판 대다협으로 다카이치 정부가 출범할 확률이 높지만 조기 총선을 치러 정권이 야당 연합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포스트 이시바 정부로 누가 들어오든 일본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장기 저성장의 원인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90년 이후 일본 경제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최근에는 0.5% 내외까지 떨어졌다. 실제 성장률도 이 수준에서 맴돌아 오쿤의 법칙상 디플레 갭이 발생한 해가 많다. 총공급과 총수요 간의 길항 작용이 없다는 의미다.
총공급 면에서 단순생산함수(Y=f(L, K, A), L=노동, K=자본, A=총요소생산성)를 이용해 잠재 성장 기반을 따져보면 노동 섹터는 인구절벽과 저출산·고령화가, 자본 섹터는 토빈 q 비율이 1을 밑돌아 생산성이 여전히 낮다. 총요소생산성도 정치권의 부정부패 등으로 사회간접자본(SOC)이 제대로 확충되지 않아 획기적인 구조개혁이 없으면 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총수요 면에서 항목별 소득 기여도(Y=C+I+G+(X-M), Y: 국민소득, C: 민간소비, I: 설비투자, G: 정부지출, X-M: 순수출)로 저성장의 원인을 살펴보면 일본 경제를 지탱해 왔던 양대 항목인 민간소비와 순수출의 기여도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항목인 민간소비는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등이 떨어지고 있어 쉽게 회복되기는 어렵다.

국민경제 3면 등가 법칙(생산=분배=지출)으로 총공급과 총수요를 연결하는 각 부문에도 병목현상이 심하다. 생산과 분배 간에는 SOC 미확충에 따른 전후방 연관효과가 떨어져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분배와 지출 간에는 일본 국민의 높은 저축률로 절약의 역설에 걸린 지 오래됐다. 지출과 생산 면에서는 해외 누수 현상이 의외로 심각하다.
포스트 이시바 정부가 이 난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현재 예상대로 다카이치 정부가 들어서면 경제정책의 핵심은 아베노믹스를 재추진할 것이라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일본의 수출입 구조가 ‘마셜-러너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 가격탄력성)>1)을 충족시키지 않아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재추진 여건도 녹록지 않다. 추진기관인 일본은행(BOJ)은 구로다 하루히코 전 BOJ 총재가 이끌었던 아베 정부 때와 달리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저금리를 통한 달러 약세를 추진하는 트럼프 정부와의 충돌도 우려된다. 1985년 플라자 협정처럼 인위적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환율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야당 연합 정부가 들어와 어떤 경제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일본 경제처럼 저량(stock)과 유량(flow) 변수에서 성장 장애 요인을 안고 있을 때는 긴축과 부양의 성격과 관계없이 반짝 효과만 나는 캠플 주사에 그친다. 주체적인 면에서 재무부와 BOJ, 스펙트럼 면에서 재정과 통화뿐만 아니라 환율정책에까지 해당한다.
포스트 이시바 정부가 가장 시급한 것은 기득권을 끊어 국민 지지도를 끌어올려 아오키 법칙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아오키 법칙이란 내각과 집권당의 합친 국민 지지도가 50%를 밑돌아 좀비 국면에 처한 것을 말한다. 정책 신호에 대한 정책 수용층의 반응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어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재정과 통화정책이 아닌 제3의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최대 돈맥경화 변수인 저축을 소비로 유도하기 위해 ‘부(負)의 저축세’ 도입을 미뤄서는 안 된다. 케인지언의 균형재정승수가 1이라는 점을 착안한 ‘간지언 정책’도 고려해야 할 때다. 산업연관표(I/O)상 병목현상은 풀기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더 강력한 친증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국내 외환시장은 지난해 12월 이후 계엄, 탄핵, 정권교체가 이어지는 속에 거시 금융 안정성이 떨어졌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에 따른 외환 수급상의 문제까지 겹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혼란이 이른 시일 내에 정리되지 않으면 이미 1420원대로 급등한 원·달러 환율이 제2 외환위기 우려가 제기될 수 있는 수준까지 추가적으로 오를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놓아야 할 때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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