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타이드' 꺾인 중남미…볼리비아, 20년 좌파정권 종식

볼리비아 대통령(임기 5년) 결선 투표에서 중도 성향의 기독민주당 소속 로드리고 파스(58)가 당선되며 20년간 이어진 좌파 정권이 막을 내렸다. 지난해 파나마에 이어 또다시 좌파 정권이 교체돼 한때 중남미를 휩쓴 ‘핑크 타이드’(좌파 정권의 연이은 집권 물결) 흐름이 한풀 꺾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20년 좌파 집권 막 내려

볼리비아 최고선거재판소는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임기 5년의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파스 당선인이 52.2%를, 우파 호르헤 키로가 후보가 47.8%를 득표했다고 밝혔다. 파스 당선인은 지난 8월 실시된 1차 투표에서 32.06%를 얻어 26.7%를 기록한 키로가 후보와 함께 결선에 진출했다. 파스 당선인은 하이메 파스 사모라 볼리비아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현 상원의원으로, 남부 타리하시장을 지냈다.

2005년 이후 이어진 20년 좌파 집권이 무너진 배경에는 심각한 경제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볼리비아는 국가 주도 경제체제에서 무리한 국책 사업과 외환정책 혼선에 따른 중앙은행의 달러 부족 사태, 관료 부패와 무능이 겹치며 총체적 경제난에 빠졌다. 정치 성향상 중도 또는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파스 당선인은 소규모 기업 세제 혜택, 지방 재정 자율성 확대 등 점진적 개혁을 주장했다.

러닝메이트 에드만드 라라 부통령 당선인(40)의 역할도 컸다. 전직 경찰인 라라는 부패를 폭로하는 틱톡 영상으로 인기를 얻으며 젊은 층과 노동 계층 지지를 확보했다. 파스 당선인은 1차 투표 전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3~4위권에 머물렀지만 SNS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 지지가 확산하며 막판 돌풍을 일으켰다.

새로 출범할 파스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파스 당선인은 선거운동 중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일찌감치 양국 간 연대 강화 방안을 모색했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두 후보 모두 미국과 더 강하고 건설적인 관계를 원한다”며 “이번 선거는 변혁의 기회”라고 말했다.

◇경제 재건 내건 우파의 반격

중남미에서는 멕시코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등 다수 국가에서 좌파 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아르헨티나 파나마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파라과이 등에서 경재 재건을 내세운 우파 성향 정치인이 잇달아 정권을 잡으며 역내 정치 지형에 변화 조짐이 나타났다.

2023년 당선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지난해 당선된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모두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 표심을 얻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후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정부 부처를 18개에서 9개로 통폐합하는 등 대규모 지출 삭감에 나섰다. 물리노 대통령도 철도 건설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친(親)미국 기조 시장 친화 정책 등 국가 경제 활성화 방안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다음달 대선을 앞둔 칠레에서도 우파 성향 후보가 지지세를 넓혀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