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금(沙金)이 발견되자 개척민들은 금맥을 찾아 서부로 몰려들었다. 화폐 가치와 경제 기반이 불안정했던 당시, 그들이 쫓은 것은 단순한 부(富)가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에서의 확실한 가치’였다. 17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투자자들은 같은 본능에 이끌려 다시 현대판 골드 러시에 뛰어들고 있다.
연초 온스당 3000달러를 돌파한 금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하며 이제는 4000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이번 상승세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이번 강세를 이끌어낸 근본적인 요인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질 금리 하락만으론 설명 부족
워런 버핏은 2011년 벅셔해서웨이 주주서한에서 “금 1온스를 영원히 보유해도 결국 마지막엔 여전히 1온스를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금이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않는 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금리 자체가 금 보유의 기회비용이 된다. 그렇기에 금의 가치는 그 자체의 내재가치보다 다른 자산과의 상대가치, 특히 실질금리 수준에 크게 좌우된다.
역사적으로도 금 가격은 실질금리와 반대로 움직여 왔으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될 때마다 금은 새로운 상승 모멘텀을 얻곤 했다. 실질금리가 하락하면 금 보유의 기회비용이 낮아지고, 그만큼 금의 투자 매력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다시 시작된 Fed의 금리 인하 사이클은 금 가격 상승세를 뒷받침하는 가장 전통적이면서 합리적인 논거로 작용한다.
다만 최근의 금 가격 상승 국면은 또 다른 논거를 필요로 한다. 2023년 중반 이후 미국의 실질금리는 2% 수준에서 정체된 반면, 금 가격은 오히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와 금 가격의 익숙한 반비례 관계가 약해진 상황에서 금의 강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너머의 새로운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호무역의 역설…달러 체제 약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고 보증한 국제 경제 질서 속에서 달러 패권은 공고해져 왔다. 특히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금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한 대로 ‘야만적인 유산(barbarous relic)’으로 평가되며 주요국들은 금을 매각하고 미국 국채 등 달러 자산으로 외환보유액을 전환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때부터 금 가격은 미국 달러 시스템의 긴장과 불안 수준을 반영하는 일종의 스트레스 지표로 기능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다. 유가 급등이 촉발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은 달러의 ‘가치’를 흔들었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수록 금은 달러의 ‘대체적 가치 저장 수단’으로 부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반복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로 달러 ‘시스템’의 신뢰가 흔들리자, 신흥국과 일부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다시 금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금 가격의 상승은 단순한 인플레이션 헤지 수요를 넘어, 달러 중심 금융 질서에 대한 구조적 불신을 반영한 결과였다.
최근 금 가격의 상승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을 동결하면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달러 자산이 더 이상 ‘무위험 자산’이 아님을 인식하게 됐다. 이후 이머징 국가들을 중심으로 외환 보유 구조의 재편이 시작됐고, 달러 및 미 국채 비중은 줄어든 반면 금의 비중은 급격히 확대됐다.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나 실질금리의 함수를 넘어, ‘달러 패권에 대한 신뢰 저하’를 반영하는 지정학적 자산으로 금의 성격이 확장됐던 점이 최근 금 가격 상승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미국의 정책 변화도 금 가격을 움직이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자주의 질서 속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고, 관세 인상 등 일방적 조치를 통해 글로벌 무역 체제의 구조적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달러 가치와 금 가격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20%의 관세 인상은 이론적으로 약 20%의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수지 균형이론에 따르면, 국가 간 무역에서 환율은 수출입이 균형을 이루도록 스스로 조정된다. 미국이 관세를 올리면 수입이 감소해 단기적으로 무역수지가 개선되지만, 이는 달러 유동성 감소와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그러나 달러 강세는 다시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시장은 균형을 복원하기 위해 환율은 달러 약세 방향으로 조정된다.
이 과정에서 달러 가치 하락은 금 가격 상승의 촉매제로 작용한다. 결국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단기적으론 물가 상승과 무역수지 개선을 유도하지만, 장기적으론 달러 체제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금을 '가치의 최후 보루'로 부상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다. 이 또한 최근 금 가격 상승을 뒷받침하는 주요 요인이다.
금 ETF로 몰리는 투자자금
이번 랠리에는 한 가지 추가적인 동력이 존재한다. 바로 개인투자자 중심의 상장지수펀드(ETF) 기반 ‘현대판 골드러시’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글로벌 금 ETF의 순매수 규모는 587.8톤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6.8톤의 순유출을 기록했던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또한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9월 한 달 동안에만 100톤 이상이 추가로 매수되며, 3년여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현재 금 관련 ETF가 보유한 금은 2020년의 정점인 3930여 톤에 아직 미치지 못한다. 이는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 자금의 유입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수급 구도는 금값 상승세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금 ETF는 실물 금을 담보로 운용되므로, 자금 유입이 늘수록 실물 수요도 함께 확대된다. 골드만삭스는 “민간이 보유한 미 국채의 단 1%만 금으로 이동해도, 금값은 온스당 약 50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개인과 기관이 동시에 ETF를 통해 금으로 자산을 이동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이번 랠리는 중앙은행과 민간 수요가 동시에 뒷받침하는 ‘견조한 수요 기반의 상승세’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단기 시세차익보다 가치 방어가 본질
금 가격의 중장기적 상승 추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Fed의 금리 인하 중단, 트럼프의 대규모 관세 인상 철회,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평화 협정 체결 등은 금 랠리를 제어할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수들이 단기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앙은행 역시 그동안 금 가격 강세를 지탱해 온 핵심 축 중 하나였다. 따라서 만약 중앙은행들이 금 매입을 중단하거나 보유액을 축소하기 시작한다면 금 가격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중앙은행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 중 95%가 향후 12개월간 금 보유를 늘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중장기 관점에서도 응답 기관의 76%는 5년 후 총 외환보유액 중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소 또는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금 가격이 조정 국면에 들어설 경우, 이를 매수 기회로 활용할 만하다.
추가적인 투자 기회를 노리는 투자자라면 금광 기업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 가격 상승은 금광 기업들의 수익성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비록 채굴 비용이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지난 2년간 금 가격의 상승 폭은 이를 크게 상회했다. 그 결과 주요 금광 기업들의 현금흐름은 개선되고 있으며, 단순 금 투자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 효과도 금광 기업 직접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금 가격의 장기 고점 국면에서도 실적 기반의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대안이다.
밸류에이션도 합리적이다. MSCI 금광산업 지수(MSCI ACWI Select Gold Miners Index)는 12개월 이익 추정치의 13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이는 지난 5년 평균을 소폭 하회하는 수준이다. 가파른 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채굴 업체의 주가보다 수익이 더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에 현재의 주가 수준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 보인다.
다만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금 관련 자산의 비중을 과도하게 늘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금은 보유 기간 동안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아 복리 효과가 낮고, 경기 확장 국면에서는 수익 창출력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 자산의 5~10% 내외에서 금을 편입하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170여 년 전 미국의 개척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금 투자는 단기적 시세차익보다 불확실성 시대의 ‘가치 방어’라는 본질적 목적에서 접근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석민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팀장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