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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동차 시장에는 ‘Buy Here, Pay Here’(BHPH)이라는 독특한 판매 방식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서, 그 자리에서 갚는다'는 뜻으로, 자동차 판매점에서 차량을 구매하면서 동시에 같은 곳에서 대출을 받아 결제까지 한 번에 처리하는 방식입니다.보통은 차량을 구매할 때 판매점에서 차를 고른 뒤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아 대금을 치릅니다. 그러나 BHPH 매장은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고 판매점이 직접 금융기관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덕분에 신용등급이 낮은 소비자도 비교적 쉽게 차량을 구입할 수 있지만, 그만큼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최근 이 시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느슨한 조건의 대출이 급증하면서 상환 불능 소비자가 늘었고, BHPH 시장에 진출한 일부 비우량(서브프라임) 업체들이 잇따라 파산하고 있습니다.
미국서 車대출 연체율 30년래 최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업체 프리마렌드캐피털은 최근 텍사스 북부연방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절차(챕터11)를 신청했습니다. 회사는 법원의 파산보호 절차 과정에서 사업 부문 매각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프리마렌드는 BHPH 시장에 진출한 업체로, 일부 자동차 판매점이 이 회사로부터 금융 서비스를 받아 소비자에게 고금리 대출을 제공해왔습니다. 그러나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높은 금리의 자동차 할부금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연체율이 급등했고, 이번 파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신용평가사 피치레이팅스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자동차대출 상환이 60일 이상 연체된 서브프라임 차주 비율은 6.56%로, 1994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톰 에세이 세븐스리포트리서치 사장은 “저소득층 경제 부문에서 이미 재정 압박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트라이컬러가 파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리마렌드마저 무너지면서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트라이컬러에 대출을 제공했던 미국 대형은행 JP모간이 약 1억7000만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트라이컬러가 발행한 자산유동화증권(ABS) 가운데 일부가 파산 직전까지도 AAA등급을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은행(BOE) 총재는 “이런 구조들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철저히 들여다봐야 한다”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시장은 작아 시스템 리스크가 없다’고 했지만 그 판단은 완전히 틀렸다”고 경고했습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악몽' 재현되나
은행 외 금융주체의 위험한 대출 관행이 확산하면서 향후 금융위기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부실 대출로 큰 손실을 본 미국 중형은행 자이언스뱅코프의 해리스 시먼스 최고경영자(CEO)도 “시장에 위험이 있다면 그곳은 사모신용일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앤드루 베일리 영국은행(BOE) 총재는 트라이컬러 파산 사태를 언급하며 이번 사태가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더 큰 위기의 전조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상황을 언급하며 경각심을 촉구했습니다.
또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은 이 같은 사례를 두고 “바퀴벌레가 한 마리 보였다면 실제로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고,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비은행권 금융기관(NBFI)의 팽창이 밤잠을 설치게 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 은행 규제가 강화하면서 대형 은행이 저신용 기업에 대한 대출을 축소했고, 그 결과 은행 대출보다 규제가 느슨한 사모신용 시장은 지난 10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낮은 규제와 불투명한 구조 속에서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자금이 몰렸기 때문입니다.
최근 파산한 프리마렌드와 트라이컬러 같은 서브프라임 자동차담보대출 업체들도 이 틈새시장에서 성장한 기업들입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이라고 해서 그 영향을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이 영역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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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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