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금융위원회가 발주한 연구용역이 3건 중 1건꼴로 한국금융연구원에 맡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절반 이상이 한국금융연구원이 배당됐다. 특정 기관 쏠림이 꾸준해 정책 연구의 객관성과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27일 한경닷컴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금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금융위원회는 정책 연구용역 134개 중 약 36% 비중인 48개를 금융연구원에 발주했다.
이 기간 금융연구원은 금융위로부터 가장 많은 연구용역을 따냈다. 같은 기간 자본시장연구원은 11건(8.21%), 보험연구원은 3건(2.24%)에 그쳤다. 나머지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서울대·중앙대 등 대학 산학협력단, 법무·회계법인, 여론조사기관 등이 분담했다.
올해만 보더라도 금융위가 발주한 연구용역 총 19개 중 10개가 금융연구원의 몫이었다. 금융연구원은 △금융 분야 AI 가이드라인 개정 방향 △자금세탁방지(AML) 제도이행평가 위험노출부문 평가개선을 위한 연구 △신용정보업 업무단위별 허가제도 운영방향 연구 △가상자산 2단계법 입법 및 스테이블코인 관련 AML 제도 보완방안 연구 등을 맡았다. 정책 연구기관 중에선 금융연구원 외 자본시장연구원만이 1개 용역(자본시장 선진화 추진 성과 및 향후 과제)을 따냈다.
자본시장연구원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 자본시장으로 중심축을 옮기겠다는 현 정부 기조 아래에서도 발주처가 특정 기관에만 쏠렸다"며 "연구진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금융정책의 질을 높이려면 발주처부터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뜨거운 감자'였던 '해외 사모펀드(PEF) 규율체계' 연구도 금융연구원에 수의계약으로 맡겨졌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으로 PEF를 향한 비판이 거세지자 금융위가 발주한 연구용역이었다. 수의계약이란 당국이 발주처 간 경쟁을 붙이지 않고 직접 발주처를 선택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연구원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간 자본시장 분야 연구가 자본시장연구원에만 치우친 측면이 있어서 조절을 위해 이번엔 금융연구원이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자문관'직에도 꾸준히 금융연구원 박사들만 파견을 갔다.
한경닷컴이 연도별 당국 파견 자문관을 집계한 결과 금융위는 국내 경제와 금융 정책 관련 자문을 제공하는 '자문관' 직에 금융연구원 출신만 파견해 왔다. 금감위 시절인 이상제 자문관을 비롯해 △이명활(2009~2010년) △장민(2011~2012년) △연태훈(2013~2014년) △박성욱(2015~2016년) △송민규(2017~2018년) △김영도(2019~2020년) △이대기(2021년) △이시연(2022년) △임형준(2023~2024년) 등이다. 이번에 이억원 금융위원장 취임 이래 새롭게 자문관을 맡은 인물도 금융연구원의 권흥진 박사다.
금감원도 2018~2019년 한 차례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박사가 원장 자문관을 수행했던 때를 빼면 전부 금융연구원 출신이 자문관으로 갔다. 연도별로 △이지언(2008~2009년) △박해식(2010년) △이대기(2010~2012년) △서정호(2013~2014년) △구본성(2015년) △서병호(2016~2017년) △노형식(2020~2021년) △송민규(2022년) △이규복(2023~2024년) △박춘성(2025년) 순이다.
금융연구원과 자본시장연구원, 보험연구원 등의 업권별 연구기관들은 각각 은행과 금융투자 업계, 보험사 등을 회원사로 둔다. 기관 운영비도 회원사 출연금으로 충당한다.
때문에 이들은 민간기구이지만, 업계에선 사실상의 국책 연구기관으로 간주한다. 인사와 예산 등에 있어 금융위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 '코드'에 맞춘 연구결과와 보고서를 내놓는 게 관행적이어서다. 사전에 당국과 큰 틀에서 의견을 조율한 뒤 연구·조사에 들어가는 식이어서, 연구계 결론은 당국의 정책을 견제하는 용도보다는 정당화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평가다.
전문가들은 연구용역 발주 주체인 '금융당국'과, 이를 수행하는 '연구기관'이 파견 등 인사교류로 긴밀히 연결된 구조에서 정책 견제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금융연구원이나 자본시장연구원의 주된 역할이 당국 정책 견제는 아니다. 정책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검증하고 보완하는 역할"이라면서도 "이들이 사실상의 국책 기관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정책을 감시하고 견제해줄 민간기관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위에서 내주는 숙제만 할 게 아니라, 금융산업이 갖고 있는 숙제를 풀어갈 주체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연구원 한 관계자는 "금융연구원은 타 기관 대비 업권 전반을 아우르는 특성이 있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며 "용역의 금융연구원 편중 현상은 예년 대비 많이 완화되고 있고, 논란이 예상되면 자체적으로 용역 수임을 피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국으로 파견되는 자문관 자리의 경우 자본시장연구원이나 보험연구원 등에서 가게 되면 특정 업권에 치우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