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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탄소세' 충격 임박…‘더러운 철강' 시대 끝나나 [글로벌 머니 X파일]

입력 2025-10-30 07:00  



내년부터 유럽연합(EU)으로 수출되는 철강, 알루미늄 등에는 '탄소 가격'이 부과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비용 효율성'이라는 패러다임이 '저탄소 경쟁력'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더러운 철강'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내년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
30일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전환 기간 종료가 2개월 남았다. CBAM은 탄소 배출이 많은 제품의 수입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는 정책이다. EU 내에서 강력한 탄소 배출 규제를 받는 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탄소 비용을 수입품에도 적용해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탄소 누출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EU로 수입되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에 적용된다. 지난 2023년부터 전환 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수입업자는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만큼의 CBAM 인증서를 구매해 제출해야 한다. 이미 원산지국에서 납부한 탄소 가격은 차감할 수 있다.

CBAM은 단순한 관세가 아니라는 평가다. EU의 배출권거래제(ETS)를 역외로 확장해 글로벌 제조원가와 무역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관련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돼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을 촉발할 수도 있다.

전환기(2023년 10월~2025년 12월)에는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만 부과될 뿐이다. 직접적인 비용 부담은 발생하지 않는다. 내년 1월부터 EU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 제품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만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인증서가 부여된다. 핵심은 실제 구매와 상계(정산) 시점이다.

최근 EU 의회와 이사회가 통과시킨 ‘옴니버스(Omnibus) 개편안’에 따라, 2026년 수입 물량에 대한 인증서 구매 및 제출 의무는 2027년 2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내년부터 철강 수입업체는 탄소 배출량 보고를 넘어 실제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이는 글로벌 철강업계의 공급망과 가격 구조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027년 '탄소 부채' 터지나
이는 내년 한 해 동안 EU로 수입된 모든 철강 물량에 대해 탄소 비용을 소급 적용해 일시에 정산해야 한다는 뜻이다. 겉보기에는 1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2026년 동안 쌓인 ‘탄소 부채’가 2027년 초에 한꺼번에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다.

내년에는 인증서 구매나 현금 지출이 없다 이 때문에 상당수 기업은 기존 방식대로 수출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027년 2월에 1년 치 탄소 비용이 한꺼번에 청구되면 현금 흐름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 수출업체나 탄소 배출량이 높은 생산공정 의존 기업들이 심각한 유동성 압박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CBAM의 실제 부담은 단계적으로 커져 처음에는 업계 부담이 작다는 분석도 있다. 2026년에는 수입 철강·알루미늄 등에 적용되는 탄소 비용이 전체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후 매년 단계적으로 인상돼 2030년에는 48.5%, 2034년에는 100%까지 늘어난다. 초기 3년(2026~2028년)에는 부담이 완만하지만 2030년대 비용이 급증하는 구조다.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인증서 가격은 EU 배출권거래제(EU ETS) 가격과 직접 연동된다. 관련 변동성 자체가 기업에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S&P 글로벌에 따르면 지난 4월 독일 경매 기준 ETS 가격은 톤당 63.80유로로 연중 최저치를 찍은 뒤 반등했다. 이달 들어 77유로 후반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ABN AMRO 등 금융업체는 해당 가격이 오는 2030년에는 톤당 145유로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철강협에 따르면, 글로벌 평균 고로(BF)-전로(BOF) 공정의 탄소 배출집약도는 철강 1톤당 2.32톤의 CO₂다. 여기에 현재 ETS 가격(약 78유로)을 단순 적용하면, 철강 1톤당 약 181유로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전통적 철강 생산방식의 가격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구조적 비용 부담이다.

EU는 제도 완화를 추진하기는 했다. 인증서 분기별 보유 의무를 기존 80%에서 50%로 낮추고, 연간 50톤 미만 수입업체에 대한 면제 조항을 신설했다. 이런 조정은 전체 탄소 배출량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 수출업체에는 체감 효과가 거의 없다. 핵심 구조인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체계는 그대로 유지됐다.

결국 2027년부터 탄소 비용이 현실화하며 관련 산업의 판도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저탄소 전환 설비에 미리 투자한 기업은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며 시장 점유율을 넓힐 수 있다. 반면 대응이 늦은 기업은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해 퇴출당하거나 M&A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CBAM의 타임라인은 사실상 글로벌 철강 산업 재편을 촉발하는 ‘보이지 않는 M&A 시계’로 작동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가격 오를까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는 물가를 움직이는 새로운 변수로도 떠오르고 있다.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 비용이 ‘그린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제품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의 서막으로 보고 있다.



현재 유럽 시장에서 거래되는 그린 스틸(저탄소 철강)의 프리미엄은 톤당 100유로에서 300유로 수준이다. 글로벌 금속 및 광업 산업 전문 기업 메탈허브에 따르면 일부 고급 판재는 500유로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자동차에 100% 그린 스틸을 적용하면 차량 가격이 평균 1% 미만(대당 100~200달러)만 오를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해당 수치는 ‘평균의 착시’라는 지적도 나온다. 강판 사용량이 많은 대형 SUV나 고장력 강판을 쓰는 프리미엄 브랜드는 그린 스틸 가격 상승의 영향을 더 크게 받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 전가는 자동차 산업을 넘어 건설·가전·기계 등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철근 가격이 오르면 아파트 분양가와 사회기반시설(SOC) 건설비용이 함께 상승하고, 이는 결국 생활물가 전반에 압박을 가하게 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대응에 나섰다. 볼보는 스웨덴 철강사 SSAB와 협력해 2025년부터 재활용 및 ‘Near-Zero Steel(SSAB Zero™)’을 양산차에 적용하기로 했다. BMW 역시 2030년까지 유럽 내 공장 강재 수요의 40% 이상을 저탄소강으로 대체할 계획을 밝혔다. 이런 ‘그린 바잉(Green Buying)’ 움직임이 철강업계의 저탄소 전환을 한층 가속할 전망이다.
'고철 르네상스'로 자원 민족주의 부상
‘그린 스틸’ 전환 앞에서 산업계가 내놓은 가장 즉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해법은 고철 재활용이다. 한때 단순한 폐기물로 취급받던 고철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핵심 원료이자 각국이 쟁탈전을 벌이는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고철 르네상스’는 새로운 공급망 병목과 자원 민족주의라는 또 다른 갈등의 불씨도 품고 있다.

고철이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의 철광석 기반 제철보다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철을 전기로(EAF)에서 녹여 철강을 생산하는 방식은 철광석과 석탄을 사용하는 고로(BF)-전로(BOF) 방식보다 친환경적이다.



세계철강협회와 글로벌에너지모니터에 따르면, 고로 방식은 철강 1톤당 평균 2.32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반면 고철 스크랩 기반 EAF 방식은 0.70톤 정도다. 현존하는 기술 중 탄소 저감 효과가 가장 확실하면서도 비용 효율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다만 모든 고철이 똑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강판이나 고급 강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나 주석 같은 불순물이 극도로 적은 ‘고급 고철’이 필요하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나오는 이런 고급 고철의 양은 매우 한정적이다. 품질이 낮은 일반 고철을 대량 투입하면 강의 내구성과 가공성이 떨어지기 쉽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 철강사들은 양질의 고철 확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자 유럽연합(EU)이 새로운 무역 장벽을 세우며 사실상 ‘자원 민족주의’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2027년부터 시행 예정인 폐기물운송규제 개정안은 비(非)OECD 국가로의 고철 수출을 대폭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명분은 환경적으로 건전한 처리다. 하지만 철강 원료를 역내에 묶어두려는 보호주의 조치라는 비판이 거세다.

이런 같은 고철 봉쇄 움직임은 세계 제조업 지형을 바꾸는 또 다른 디커플링의 신호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철광석과 석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이 제조 경쟁력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주원료가 고철로 바뀌면서 경쟁력의 중심은 ‘자원 매장량’에서 ‘소비 시장에서 발생하는 고철의 양’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EU처럼 대규모 제조업 기반과 소비 시장을 동시에 가진 선진국은 고철의 주요 생산지로 부상한 이유다.

글로벌 그린 스틸 전환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한국 철강 산업에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 철강 산업의 아킬레스건은 고로-전로(BF-BOF) 방식의 높은 의존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기준 한국 철강 산업의 고로-전로(BF-BOF) 방식 의존도는 약 70%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는 막대한 탄소 배출을 의미한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분석에 따르면, CBAM이 본격 시행될 경우 한국 철강업계가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은 2026년 851억 원에서 시작하여 2034년에는 55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EU 수출 물량에만 부과되는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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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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