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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한테 밀려서 망한줄 알았는데..."
160살 먹은 장수 기업 주가가 최근 10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통신장비기업 노키아 얘기다. 세계적으로 5세대 이동통신(5G) 투자 붐이 불었던 2020년대 초 반짝 관심을 받았다가 한동안 가격이 내렸지만, 이젠 인공지능(AI) 신사업 기대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AI 인프라’ 기대에 한달간 40% 상승”
미국 뉴욕 증시에 주식예탁증서(ADR) 형태로 상장된 노키아는 지난달 41.02% 올랐다. ADR은 미국에 본거지를 두지 않은 기업이라도 미국 증시에서 주식이 거래될 수 있도록 미국 예탁기관이 발행하는 증서다. 주로 본사가 있는 나라 증시에 상장하는 통신기업 등이 ADR을 발행하면, 외국인 투자자가 그 나라 증시에서 주식을 사지 않아도 ADR을 통해 주식을 산 효과를 낼 수 있는 구조다. 
이 기업의 ‘본주’도 같은 기간 핀란드 헬싱키 증시에서 41.3% 상승했다. 지난 28일엔 6.59유로에 장을 마감해 2016년 1월 말 이후 최고가를 찍기도 했다.
노키아는 중국 화웨이에 이은 세계 2위 통신장비 업체다. 20여년 전엔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1위로 이름났지만, 이후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실패하면서 애플과 삼성 등에 밀려난 뒤 통신장비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때문에 4세대 이동통신(LTE)·5G 등 통신 방식 세대가 바뀌는 시기에나 주가가 일시적으로 떴다가 가라앉는 ‘사이클주’ 취급을 받았다.
"AI 인프라 실적 19% 성장…고성능 통신 인프라 수요 늘어"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AI 통신 인프라 사업을 키우면서 ‘AI 수혜주’ 기대를 받고 있어서다. 지난 4월 노키아는 자사 출신 최고경영자(CEO) 페카 룬드마크 후임으로 저스틴 호타드 CEO를 새로 선임했다. 호타드 CEO는 인텔에서 데이터센터와 AI 사업을 담당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 지난 6월엔 미국 광통신 장비기업 인피네라를 인수하기도 했다. 광케이블 등 광통신 장비는 데이터센터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AI 인프라 관련 실적도 점점 늘고 있다. 노키아는 지난달 23일 환율 변화 등을 반영한 매출이 48억3300만유로로 전년대비 9% 늘었다고 밝혔다. 모바일통신 부문 매출이 지난 1년간 약 4%만 성장한 반면, 같은 기간 통신 인프라 부문은 11%, 클라우드·네트워크 서비스 부문은 13% 성장했다. 모바일통신 장비는 5G 투자 붐 이후 일부 업그레이드 수요나 유지·보수 매출이 주를 이루고, 기성시장이다보니 경쟁이 치열해 마진율도 낮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노키아는 “통신 인프라 사업부 중 특히 광통신 사업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 늘었다”며 “AI·클라우드가 확산하면서 안정적인 고성능 통신 인프라를 원하는 고객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했다. 노키아에 따르면 이 기업은 올 3분기 매출의 6%가 하이퍼스케일러(빅테크 등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사)로부터 나왔다. 직전 분기 5%에서 소폭 증가한 수치다.
엔비디아와도 ‘맞손’…통신장비 공동개발키로
여기에다 지난달엔 글로벌 AI칩 시장 최대 기업인 엔비디아가 10억달러(약 1조4200억원)를 투자한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등했다. 엔비디아는 주당 6.01달러에 신주 약 1억6639만주를 인수해 노키아 지분 2.9%를 확보했다.두 기업은 AI 기반 무선통신 인프라 공동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노키아의 5G·6세대 이동통신(6G) 무선접속망(RAN) 소프트웨어를 엔비디아 시스템 기반으로 운영하도록 하고, AI 기반 RAN(AI-RAN)을 함께 개발하는 게 핵심이다.

AI-RAN은 기존 RAN에 AI 기능을 결합한 기술이다. 각종 차세대 AI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려면 기존보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트래픽(송수신량)이 발생할 전망이다. 이용자가 온갖 도로 상황을 반영해 자율주행으로 이동하는 차를 탄 채 초 단위로 AI 주식 시장 분석을 확인하고, 중간중간 4K 화질로 증강현실(AR) 뉴스 영상을 보는 식이다. 사업장으로 눈을 넓히면 더욱 그렇다. 공장에서 실시간 AI 품질 검수가 이뤄지는 한편 피지컬 AI 기능을 들인 로봇이 줄지어 일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를 지원하기 위해 무한정으로 통신망을 늘리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AI·통신업계는 AI-RAN을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AI 알고리즘을 통신망 전반에 적용해 네트워크 종단(엣지)에서 실시간으로 AI 연산을 처리하고, 기지국이 알아서 트래픽에 맞게 주파수 분배를 하는 등 네트워크 자원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게 하는 게 목표다. 기지국에 각각 AI 컴퓨터를 심는 셈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달 “AI가 생성형 AI, 로봇공학 등으로 확장하면서 무선통신 네트워크 자체를 재창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통신 기술을 갖춘 노키아와 협력하는 것은 피지컬AI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라며 그는 “피지컬 AI 시대에는 엣지 디바이스가 직접 AI 연산을 수행해야 하고, AI 데이터센터와의 통신량도 많아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AI-RAN은 중간 허브 역할을 해 데이터 전처리와 최적화를 수행하게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 vs ‘아직은 먼 얘기’
최근 노키아 주가를 띄운 AI 사업 청사진을 두고 월가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제퍼리스는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발표된 지난달 28일 노키아에 대해 기존 ‘보류’였던 투자의견을 ‘매수’로 바꿨다. 목표주가는 기존 4.50유로에서 6.60유로로 올렸다. 일각에선 AI 시장이 커질 수록 노키아가 새로운 수요처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PP포어사이트의 파울로 페스카토레 연구원은 “차세대 통신망은 새로운 AI 기술 도입에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엔비디아의 이번 투자는 노키아에 대한 강력한 신뢰의 표시”라고 했다.
반면 아직 ‘AI 수혜’를 논하기는 멀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AI-RAN은 아직 기술개발 단계로 상용화 전이고, 노키아가 다른 경쟁 기업들을 제치고 신시장을 거머쥘지는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가 노키아와 독점적 협력 관계를 약속한 게 아닌 만큼 노키아의 최근 주가 급등이 과도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라며 “최근 미국 동종업체 시스코시스템즈와도 AI 인프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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