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에는 프랑스 피아니즘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타로가 리사이틀 형태로 먼저 관객들과 만났고, 둘째 날에는 타로가 케라스와 조우해 낭만적인 앙상블을 들려줬다. 최근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케라스가 연주한 <르 바디나주(Le Badinage)>가 삽입되어서인지, 공연장에는 그와의 내적 친밀감을 표현하는 관객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Day 1. 타로의 피아노 리사이틀
11월 1일 공연은 타로의 독무대였다. 바로크의 라모, 고전의 모차르트, 신고전의 폴랑크, 낭만의 사티 그리고, 현대의 피아프에 이르기까지 그는 시대를 넘나들며 피아노 위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재즈처럼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1번 A장조, K.331 알라 투르카>와 라모의 <새로운 클라브생 모음곡집 a단조, RCT 5> 는 신선하면서도 우아했다. 특히 타로는 음악이 가진 뉘앙스, 분위기, 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당김음과 여운조차도 센스있게 표현해 다른 차원의 연주를 들려줬다.
풀랑크의 <오마주 에디트 피아프 (15번 즉흥연주곡)>과 바이센베르크의 <당신은 당신의 말을 잊어버렸지>에서 타로의 피아노는 또 한 번 변신했다. 건반 위를 훨훨 나는 나비 같은 ‘타로’의 손놀림은 피아노를 춤추게 했고, 프렌치 키스하듯 뒹구는 윗 건반과 아랫 건반의 결합은 음표 뒤에 숨어있던 감정들이 끌어냈다.
특히, 깊어진 가을의 정취를 짙은 농도로 물들인 사티의 <난 널 원해(Je Te Veux)>는 2층 객석의 중년 남성으로 하여금 “브라보”를 외치며, 고조된 감정이 표출하게 했다. 그때까지 조용했던 관객들도 “바로 그게 내 마음이요.” 라고 동의하듯이 함께 웃었고, 타로도 그 남성을 향해 지긋이 미소를 보냈다.

비에네르의 <샤를 트레네의 두 개의 샹송>과 풀랑크의 <사랑의 길>에 이어진 <피아프, 바바라, 조세핀 베이커, 자크 브렐 등을 위한 즉흥곡>은 격정적인 사랑의 무드를 선사했다. 앵콜로 이어진 사티, 피아프, 몰루지의 곡에서 그는 프랑스 음악에 대한 헌사이자 존경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이날 ‘타로’의 리사이틀은 휘황찬란하면서도 품격 있는 음악적 체험이었다. 100여분 동안 폭넓은 음악의 색채를 표현하면서도, 자아가 명확한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가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했다.
Day 2 타로 & 케라스 듀오 리사이틀
둘째 날, 케라스는 1707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카이저(Kaiser)를 들고, 타로와 함께 무대 위에 섰다. 약 30년의 세월을 함께한 음악 동료답게 타로와 케라스는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듯했다. 이날 공연에서 이 둘은 풀랑크의 <프랑스 모음곡>과 브람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No.1 E단조 Op.38>, 드뷔시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No.1 D단조, L.135>,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단조, Op.40> 등을 연주했다.
연주 내내 타로와 케라스의 손짓과 몸짓, 맥박과 호흡이 일치하는 느낌을 받았고, 두 악기가 연결되어 강한 영혼의 유대감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타로와 케라스의 연주는 미슐랭 3 스타의 셰프가 제철 음악 재료로 만든 파인 다이닝을 선사하는 시간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공연장을 찾을 팬들을 위해 직접 사인을 해주고, 정성스럽게 인사를 나눈 타로와 케라스에게 아티스트의 품위와 매너를 느낀 것은 비단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 같다.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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