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른바 '키덜트(아이 같은 감성의 어른)'가 주도하는 '수집품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일부 관련 상품이 금융화되고 대체 자산으로 주목받으면서다. 단순한 취미 생활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직면한 전통 장난감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 조작과 과잉 공급이라는 거품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추억이 자산화되는 정점은 경매 시장에서 나타났다. 지난 8월 헤리티지 옥션에서 '조던·코비 듀얼 로고맨(1/1)' 카드가 1293만 2000달러에 낙찰되며 역대 스포츠 카드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샤넬 클래식 미디엄 플랩백의 미국 판매 가격 1만1300달러(지난달 기준)를 압도하는 금액이다.
수집품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단순히 '옛날이 좋았다'는 감상적인 향수가 아니다. 오늘날의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과거의 추억을 ‘디지털 자산’으로 재해석한다. 이를 거래 가능한 가치로 바꾸는 데 능숙하다. 이 현상을 ‘네오-노스탤지어(Neo-Nostalgia)’라고 부른다.

네오-노스탤지어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단지 기억을 되새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추억의 물건, 예를 들어 1990년대 게임기, 초기형 스니커즈, 희귀한 피규어 등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시 사고팔며, 과거의 감성을 ‘현재의 자산’으로 만든다. 디지털화된 중고 거래 시장, NFT, 한정판 리셀 문화 등이 모두 이 흐름의 일부다.
네오-노스탤지어는 ‘회상’이 아니라 ‘재창조’라는 분석이다. 과거의 문화가 새로운 세대의 손끝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얻는 순간, 추억은 더 이상 사라진 것이 아니라 되살아난 ‘경제적 콘텐츠’가 된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취향의 유행을 넘어, 세대가 과거를 소비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수집품 경제의 규모는 정의에 따라 갈린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예술품, 와인, 클래식 카부터 키덜트 품목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글로벌 전체 수집품 시장은 올해 약 3203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 거대한 수집품 경제의 중심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영역은 키덜트 시장이다. 키덜트는 어린 시절의 취향을 성인이 된 뒤에도 적극적으로 즐기고 소비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단순한 장난감 수집가가 아니라, 감성과 투자 감각을 결합한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포켓몬 카드로 대표되는 글로벌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시장조사업체 'Mordor Intelligence'와 'Custom Market Insights'에 따르면, 전 세계 TCG 시장 규모는 올해 75억 1000만 달러에서 141억 2000만 달러로 추정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7~8%에 성장할 전망이다.
이런 성장세는 침체하던 전통적인 장난감 산업의 구조를 변화시켰다. 서카나의 글로벌 장난감 산업 분석가 프레데릭 투트는 "G12 모든 국가가 동시에 성장하는 것은 이례적이며, 이런 성장세는 전례도 없고 만 12세 이상 소비자에게 크게 기인한다"고 밝혔다.

수집품 경제의 호황은 상반된 두 전략인 '대중화된 노스탤지어'와 '극단적 희소성'에 의해 동시에 이뤄졌다는 평가다. 레고는 '대중화된 노스탤지어'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레고는 성인용 고가 라인업과 다양한 IP(지식재산권) 협업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닐스 B. 크리스티안센 레고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실적 발표에서 "우리의 강력한 성과는 '모든 연령과 관심사'를 아우르는 다양하고 혁신적인 포트폴리오에 의해 주도됐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내년 출시를 목표로 포켓몬과 협업을 발표하며 밀레니얼 세대의 향수도 공략하고 있다.
반면 샤넬은 '의도된 희소성' 전략을 구사하며 럭셔리 시장과 수집품 시장의 경계를 허문다는 분석이다. 샤넬은 연간 구매 쿼터(클래식 플랩 연 2개 제한)를 앞세워 일부 제품을 접근 자체가 어려운 자산으로 만들었다. 두 전략은 상반되어 보이지만 '가치 입증'과 '소속감'이라는 소비자의 욕망을 공략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평가다.
추억이 금융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표준화'와 '유동성'이라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최근 거대 자본은 이 두 가지 인프라를 완성하며 관련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자산화의 첫 단계는 표준화다. PSA(Professional Sports Authenticator), BGS(Beckett Grading Services) 등 그레이딩(등급 감정) 회사가 핵심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트레이딩 카드의 상태를 세밀하게 평가해 10점 만점의 등급으로 매긴다.

카드 표면의 스크래치, 모서리의 마모, 인쇄 정렬 상태 등 미세한 요소까지 분석해 카드의 ‘객관적 가치’를 수치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PSA 10점 만점을 받은 카드와 9점 카드의 가격 차이는 수십 배에 이를 만큼 등급이 시장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카드의 등급 부여는 단순한 감정 절차가 아니라, 감성적 수집품을 금융 자산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장치다. 카드 한 장이 예술품처럼 ‘공인된 가치’를 부여받는 순간, 수집은 개인의 취미를 넘어 글로벌 거래 시장의 구조 속으로 편입된다.
글로벌 카드 등급 정보 서비스인 젬레이트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 동안 주요 4대 업체의 합산 등급 감정 물량은 193만 장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업계 1위인 PSA가 144만 장을 처리했다. 2024년 연간 기준으로도 PSA는 1530만 장을 처리하며 관련 시장을 주도했다.
수집품 경제의 가장 큰손은 이베이다. 이베이는 인수합병(M&A)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시장의 '인증-보관-거래' 밸류체인을 사실상 수직 계열화했다는 평가다. 이베이는 2022년 250달러 이상의 트레이딩 카드에 대해 '진품 보증' 서비스를 도입하며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위조품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같은 해 TCG 전문 마켓플레이스인 'TCGplayer'를 인수하며 핵심 유통망도 확보했다.
지난해 4월에는 이 산업의 지각 변동을 일으킨 빅딜도 성사됐다. 이베이는 콜렉터스(PSA 모회사)로부터 하이엔드 경매사 골딘을 인수했고, 자사 보관소 '이베이 볼트'를 PSA에 매각했다.
이런 복잡한 거래의 핵심은 분업과 집중 전략이다. 이베이는 물류·보관에서 발생하는 파손·분실·보험 비용 같은 리스크를 떠안지 않기로 했다. 실물 보관과 인증은 업계 1위인 PSA에 맡기고, 자신들은 거래가 활발하고 수익성이 높은 두 축인 슈퍼 프리미엄 카드가 오가는 하이엔드 경매(골딘)와 이용자 저변이 넓은 대중형 마켓플레이스(TCGplayer)에 역량을 모았다. 이렇게 하면 이베이는 수수료와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재고·창고·보험이라는 ‘무거운 자산’을 피할 수 있다.

반면 PSA는 이베이를 비롯한 대형 마켓플레이스의 물량을 흡수하며 유일무이한 신뢰 인프라로 부상했다. 등급(그레이드) 부여와 실물 보관을 동시에 장악했다. 사실상 시장의 ‘중앙은행’ 겸 ‘신탁 기관’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다.
PSA가 매긴 점수는 가격의 기준금리처럼 기능한다. PSA 금고에 보관된 카드는 담보자산처럼 거래 생태계를 뒷받침한다. 결과적으로 수집품 경제는 이베이의 유통·거래 네트워크와 PSA의 신뢰·보관 인프라라는 투트랙으로 안정화됐다. 자산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이는 감성적 취미의 영역이 아니라, 규칙과 신뢰로 움직이는 금융 생태계로 전환을 뜻한다.
제이미 이아논 이베이 CEO는 해당 거래에 대해 "이번 딜은 수집 취향형 이커머스의 미래를 재구성하려는 미션을 진전시킨다"고 밝혔다. 냇 터너 콜렉터스 CEO 역시 "엔드-투-엔드(구매·그레이딩·보관·판매) 여정으로 수집가 경험을 대폭 개선한다"고 강조했다.
수집품 경제 붐의 정점에는 '수집품이 전통 자산보다 뛰어난 수익률을 보인다'는 근거가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선 의문을 제기하며, 시장의 양극화와 거품 리스크도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부유층의 수집품 시장은 다소 냉각된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나이트 프랭크가 발표한 ‘럭셔리 투자 지수’에 따르면, 작년 해당 지수는 3.3% 하락했다. 해당 지수는 미술품, 시계, 와인, 명품 자동차 등 부자들이 투자 대상으로 삼는 대표적인 럭셔리 수집품들의 가격 변동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같은 기간 미국의 S&P500 지수는 상승세를 보였다. 이는 전통적인 주식 시장이 호조를 보이는 동안, 대체 자산으로 여겨지는 럭셔리 수집품 시장은 위축됐다는 것이다.
키덜트 대상 수집품 시장이 산업화하면서 이른바 '제조된 희소성'의 위험이 현실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정판 전략'이 수요 예측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는 피규어 기업 펀코다. 펀코는 과잉 생산으로 재고가 쌓이자, 2023년 상반기 약 3000만~3600만 달러 규모의 재고를 폐기하는 극단적 조치를 단행했다.
펀코가 '다양한 IP'의 과잉 공급 문제라면, 포켓몬은 '단일 IP'의 천문학적 공급이 문제가 됐다. 포켓몬 컴퍼니는 2024~2525 회계연도 동안 총 102억 장의 카드를 인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팬데믹 이전(연간 15억~20억 장)보다 급증한 규모다. 1996년 이후 누적된 750억 장의 상당 부분이 최근 5년 내 생산됐다. 이는 희소성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한국에서는 한정판 거래 플랫폼은 크림이 대표적이다. 2023년 11월 전문 셀러를 도입한 크림은 지난해 전문 셀러 누적 거래액 1000억원을 돌파했다. 거래액은 전년 대비 약 225배 늘었다. 지난달엔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처음으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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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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