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밀려나 경기도 출퇴근하며 김어준 방송 듣는 진보 영포티들은 이재명 정부 때문에 경기도 외곽이나 천안까지 밀려나게 생겼다."
이재명 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인 10·15 대책이 발표된 뒤 장예찬 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의 과장 섞인 이 말은 2021년 '부동산 광풍'의 잔상과 함께 오늘날의 체감 현실을 보여준다.
'부동산'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2030세대는 '영포티'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자 서울에서 경기도로 밀려난 서울 출퇴근자로 여긴다. 문재인 정부 집값과 전셋값이 한꺼번에 솟구치던 때 이런 '대깨문' 밈이 분노와 조롱을 흡수했다면, 2025년의 키워드는 영포티다.

<i>"서울 서대문구에서 전세를 살던 대깨문 김모씨는 종부세 인상 뉴스에 투기꾼 놈들 잘됐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5개월 후 전셋집 재계약 날 월세 200만원을 내라는 집주인 말에 영문도 모르고 경기도로 쫓겨나게 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빨간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그의 이어폰에선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흐르고 있다."</i>
2021년 온라인을 떠돌았던 '어느 대깨문의 일기'는 당시의 민주당 지지층을 바라보던 일각의 시선이 담겨 있다. 시간이 지나 대깨문에 대한 이런 조롱은 영포티로 거의 비슷하게 옮겨갔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2025년의 영포티(4050세대)는 어느 연령대보다 강력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세를 보여준다. 대깨문과 영포티는 처음 사용될 때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지칭하던 용어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조롱의 대상으로 변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40대를 축으로 한 영포티 중 일부는 자가 마련에 성공했지만, 커진 부채와 길어진 통근을 감내하는 '자산·부채의 세대'인 게 사실이다. 반면 2030 세대 '넥스트 포티'는 매매 진입선에 닿지도 못한 채 월세 비중이 치솟는 시장에서 주거 불안을 체감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이 쉬지 않고 출렁인 지난 10여 년,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이렇게 세대를 갈랐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심화하는 전·월세 구조 변화는 이 격차 쐐기를 박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40대는 상승장 전이나 초·중반에 내 집을 구매하거나 갈아타기로 자산을 확장한 그룹과 가격 급등기·고금리기를 거치며 첫 매수나 갈아타기를 놓친 그룹으로 분명하게 갈린다. 전자는 주거 안정과 자산 증식의 하방이 확보된 층이고, 후자는 월세와 고정 지출의 부담을 떠안게 된 층이다.

국가통계포털이 제공하는 서울 주택소유 가구수의 연령별 비중을 보면, 40대 이하의 '탈서울' 행렬은 뚜렷하게 관찰된다.
통계가 제공되는 2015년에서 2023년을 분석한 결과, 2015년 25%였던 40대의 서울 주택소유 가구 수는 2023년엔 20%로 하락했다. 넓은 의미에서 영포티로 엮이는 50대는 27%에서 25%로 소폭 줄었다. 30대 역시 13%에서 9%로 비중이 줄었다. 반면, 60대 이상 연령대에서는 서울 주택을 더욱 많이 소유하게 됐다. 2015년에 18%이던 주택 소유 가구 비중은 2023년에는 24%까지 증가했다.
또 다른 통계를 뜯어보면, 40대 내부에도 자산이 축적된 집단이 따로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주택소유통계' 결과에 따르면, 40대 주택 소유자 비중은 21.2%, 50대 주택 소유자 비중은 25.2%다. 특히 2건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비중은 40대 14.8%, 50대 17.9%를 차지해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이러한 40·50세대의 분화의 결정적 차이는 '시간표'에서 비롯됐다. 2019~2021년의 급등기와 2022~2023년 조정기, 2024~2025년 재상승 구간을 통과하는 동안, 일찍 올라탄 40대는 대출 규제가 비교적 느슨할 때 레버리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 반면 늦게 올라탄 40대는 더 엄격해진 대출 규제와 비싸진 매물을 동시에 마주했다.
이에 따라 '한 발 느렸던' 40대는 조정기 이후 첫 매수나 갈아타기로 이미 사다리에 올라탄 이들을 추격하는 흐름이 강화됐다. 2019년부터 작성된 연령별 아파트 매입 비중을 보면, 40대는 2022년 23.6%로 주춤했지만 2024년 31.7%로 8.12%포인트 급반등했다. 2020~2021년 상승장에서 30대가 주도권을 쥐었던 흐름과 달리, 재유입 국면(2023년 이후)에선 40대가 더 가파르게 복귀해 30대(31.8%)와 비슷한 비중을 보였다.

서울에 직장을 둔 한 40대는 "신혼 시절엔 집 살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고, 30대 때는 망설이다 집 살 타이밍을 놓쳤다. 한 번 시기를 놓치고 나니 내 집 마련 문턱이 훨씬 높아졌다"며 "같이 출발했던 동기들과 자산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급해진 차에, 조정기가 끝나고 다시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것 같아 '영끌'해서라도 집을 마련했다"고 했다. 이 40대 직장인은 "생활은 빠듯하지만, 전·월세 불안과 자산 격차를 생각하면, 무리해서라도 사다리에 올라타길 잘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 연령대별 평균 자산은 전년 대비 39세 이하에서는 6.0% 감소했다. 40대 이상 세대에서는 모두 자산 보유액이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39세 이하의 자산 감소 현상은 더욱 대조된다.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를 봤을 때 2030이 자산을 덜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 2030 사이에서 '우리에겐 기회조차 없다'는 패배감이 팽배하다는 점이다.
여기엔 2025년 부동산시장이 '월세 시대'로 빠르게 향하는 게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의 전체 주택 월세 비중은 64.1%를 기록했다. 2023년 56.6%, 2024년 60.0%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는 것이다.
임대차법 도입 이후 전세 시장의 변형, 예금 금리 하락, 대출 규제 등이 겹치며 '전세의 월세화'는 점차 공고해지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서울 월간 아파트 월세가격지수 상승률은 7.15%를 나타내 2016년 통계 작성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기간 수도권 월세가격지수 상승률은 5.95%였다.
이런 월세화는 현금 여력이 부족한 청년과 사회 초년생에게 특히 가혹하다. 매달 현금흐름이 줄어드는 만큼 매매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종잣돈의 축적 속도를 더욱 느려지게 한다.

주택구입부담지수(K-HOI)로 보더라도 수도권 집 구매 가능성은 낮은 구간에 고착돼 있다. 아파트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은 2017년 평균 6.7에서 2021년 10.1까지 급등했다가, 2023년 8.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현금과 고소득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이들만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 됐다. 올해 2분기, KB 대출을 활용해 서울 아파트를 산 가구의 연평균 소득 중윗값은 9173만원으로 사상 최고를 찍었다. 이 기간 서울 PIR은 10.5~10.6을 나타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을 극단적으로 조이는 정부 정책이 나오면서 20·30세대의 내 집 마련은 더욱 요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인 10·15 대책은 서울 25개 자치구 전체와 경기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규제지역에서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70%에서 40%로 강화 △전세대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도입 △스트레스 금리 하한 상향 조정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상향 조기 시행 등 수요 억제책이 총동원됐다.
한 30대 초반 직장인은 "한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자산을 축적하고 불리는 가장 큰 수단이라는 의미가 있지 않나"라며 "이렇게 대출을 막아버리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 없는 20대나 30대는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된다. 당장 우리 부부도 사고 싶은 집을 못 사게 됐다"고 토로했다.
30대는 자산 취득 여부에 따라 갈라진 앞선 세대를 보며 '지각 비용'에 대해 학습했다. 급등장이 오기 전 '못 사면 영영 못 산다'는 학습효과가 각인됐고, 조정기에도 매수 타이밍을 늦출수록 감당해야 할 지각 비용이 커진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무주택 30대의 자산 취득은 특히 2022년 이후 급증했다. 이는 '벼락거지'를 피하려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30대 주택 구입자는 부동산 시장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연령별 아파트 매매 거래 현황을 보면, 30대 비중은 31.7%까지 상승해, 31.9%를 기록한 40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올해 들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했다. 올해 거래 현황을 살펴보면, 30대는 4월을 제외하고는 모든 연령대 중에서 가장 많은 서울 주택을 매매했다.
경기도와 인천에서도 30대의 아파트 매입 비중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30대 매입 비중은 2019년 24%에서 2024년 28%까지 올랐고, 인천에서도 같은 기간 24%에서 28%로 증가했다. 집 상승기를 거치며 서울 진입에 실패한 30대가 매입 시점을 늦추기보다는 '지금 살 수 있는 집'에 집중한 결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했다. 강력한 규제인 10·15 대책 발표 이후 생애 최초로 서울에 주택을 구입한 이들 중 52.1%는 30대였던 것으로 나타났다.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비교적 손쉽게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선배 세대들과 자산 격차가 확대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지금 아니면 나는 계층 사다리에 영원히 타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 저성장 장기침체 길목에서 고도성장기와 달리 모두가 자산을 축적하는 게 아니라는 불안감 등이 30대의 등을 떠밀고 있는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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