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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속에도 웃는다…일본의 '체홉'이 만든 용길이네 곱창집

입력 2025-11-07 14:34   수정 2025-11-19 10:02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짐도 다 쌌는데, 동생이 감기에 걸려 못 갔다. 그런데 한국으로 가는 배가 침몰해버렸다고 들었지. 그렇게 오사카에 남은거야."



일본의 이름난 극작가이자 재일동포 2.5세인 정의신 연출은 자신의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곱창집'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불러냈다. 14년만에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돌아온 작품 '야끼니꾸 드래곤'의 장면과 대사는 그가 보고 느껴온 자이니치(재일 동포)의 삶이 투영돼 있다. 지난 6일 예술의전당에서 그를 만났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전쟁에 패망한 일본의 간사이 지방에 남은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김용길은 곱창 가게를 열고 아내와 세딸, 막내 아들과 함께 근근하게 삶을 꾸린다. 1970년대 당시 고기가 아닌 부산물을 구워먹는다는 것은 재일 동포가 겪는 생활고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여러 현실을 대변한다. 곱창을 구워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들의 모습에는 시대의 상처와 희망이 지속적으로 교차하며 소소한 웃음을 주기도 한다.

이날 정의신은 "CJ토월극장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일본 초연 당시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정의신을 "체홉에 비견될 정도로 희극과 비극을 잘 버무리는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이 작품이 한국에 올랐을 때(2008년, 2011년)엔 거의 모든 관객이 용길이와 함께 울었다. 정의신은 "1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마이너리티"라고 고백했다. 최근 올해 이 작품은 한일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최근 도쿄에서도 공연됐고 다시금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나이가 있는 일본인 관객은 고향을 떠나 도쿄로 상경해 고생했던 자신의 청춘을 떠올렸고, 젊은 관객은 일본 사회에 심각한 가족 붕괴 문제를 제 연극을 통해 보다 절실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나의 가족·작은 재일 교포 사회를 다룬 작품인데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세상에게 공감을 주는 소수자의 문제를 다뤘기 때문 아닐까요."

작품 속 소년이자 용길이의 아들 토키오는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작가의 분신같은 존재다. 극 중 토키오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정의신은 "땅을 빼앗기고 갈 곳 없는 가족의 이야기가 유효하듯 차별도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했다. "언제쯤 차별이 사라질지 제게 묻는 질문은 전쟁이 사라질 수 있을까?하는 질문과 똑같은 것 같아요. 어려워요, 모르겠습니다."

정의신의 작품 세계는 늘 디아스포라와 마이너리티에 있다. "재일교포 뿐 아니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이야기를 썼어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때마다 소수자들의 고통은 출구가 보이지 않을만큼 힘들다는 걸 느끼죠. 그래도 그걸 기록해야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과 일본은 미묘한 관계다. 우호적인 관계였다가 순식간에 급랭한다. 이럴 때마다 재일 교포 예술가로서 느끼는 심정이 어떨까. 그는 답변 전 골똘히 생각했다.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지원금 규모가 달라지기도 하죠. 그런데 거기에 휘둘리면 예술가의 입장도 바뀌게 돼요. 무엇을 쓰고 싶은지, 주장하고 싶은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정의신은 자신의 연극을 제사에 비유했다. "어머니가 아침 일찍부터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요리를 밤에 대접하는 마음으로 '야끼니꾸 드래곤'의 무대도 정성껏 준비했어요."

이번 공연에는 기존 배우들이 세월만큼 성숙해진 모습으로 참여한다. 한·일 배우들을 두루 기용한 이 무대에 다시 서는 건 용길이의 아내 역할을 맡은 연극배우 고수희 등이다. 정의신은 "한국 초연 당시 30대였던 고수희씨가 세월이 지나니 제가 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더라"며 "어머니의 마음에 더 가닿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해줬다"고 전했다. 정의신은 "사는 게 싫어질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도 '그래도 살아볼만 하네'라는 마음을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에게 익히 알려진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 양석일의 영화 <피와 뼈>, 정의신의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은 모두 일본 사회 속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의 삶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모국어가 일본어이고, 일본인처럼 생각해도 제대로된 직업은 구할 수 없다. 차별은 여전히 그들의 일상 속에 스며 정체성을 뒤흔든다. 정의신이 무대 위에서 불러낸 결핍속의 유머, 비극 속의 희망을 그린 '야끼니꾸 드래곤'을 봐야 할 이유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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