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85) 하원의원이 6일(현지시간) 내년 11월 치러지는 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정계 은퇴 선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날 AP통신 등에 따르면 펠로시 의원은 이날 자신의 선거구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영상 연설에서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로부터 펠로시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그가 형편없는 일을 했고 나라에 막대한 피해와 명성의 손실을 안겨준 사악한 여자(evil woman)라고 생각한다"며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의 귀환(Great American Comeback)'을 주제로 하원 본회의장에서 국정 연설을 했다. 박수를 받으며 입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단에 올라 준비해 온 연설문 2부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각각 건넸다. 이는 의례적인 절차였다. 펜스 부통령은 상원 대표로 연단 옆에 자리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연설문을 건넸고, 펠로시가 악수를 청하자 그대로 등을 돌려 무시했다.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공화당 의원들은 여러 차례 기립 박수를 보냈지만, 펠로시와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연설이 끝난 직후 펠로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트럼프 대통령이 마무리 인사로 "하나님,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연설문을 높이 들어 올린 뒤 힘껏 찢었다. 트럼프의 맺음말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연설문은 갈기갈기 찢겼고, 펠로시는 조각난 종이를 다시 집어 연단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펠로시 의원을 "미친 낸시(Crazy Nancy)"라고 맹비난해왔다. 펠로시 의원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구상에서 최악의 존재(worst thing on the face of the Earth)"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펠로시 의원이 2027년 1월 임기 종료와 함께 40여년의 정치 경력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여성 연방 하원의장 기록을 가진 펠로시 의원은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주 무대였던 정치권에서 여성의 유리천장을 직접 깨며 새 역사를 쓴 인물로 평가받는다.
진보 성향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 정치인인 펠로시 의원은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1987년 47세에 늦깎이로 정계에 입문했다. 점차 정치적 입지를 넓히던 그는 하원 원내대표로서 2003년부터 20년간 민주당을 이끌었으며 그중 8년은 두 차례에 걸쳐 하원의장을 지냈다.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 입법과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등의 통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두 번째 하원의장을 역임하면서는 당시 집권 1기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거칠게 대립했고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2019년과 2021년에 걸쳐 두 번이나 가결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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