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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있습니다!" 법정드라마 속 장면, 현실엔 없다?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입력 2025-11-10 07:00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필자는 평소 미국 법정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다. 그런데 미국 로스쿨 유학 시절 직접 경험했던 미국 재판은 드라마 속 긴장감 넘치는 장면과는 사뭇 달랐다. 어느 날 미국의 한 법원에서 현지인 판사와 하루 동안 재판 일정을 함께 하며 여러 사건을 방청한 뒤 저녁 식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그 판사는 내게 "미국 법정 드라마를 자주 보는가, 실제 재판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나는 볼 때마다 판타지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한국은 어떤가"라고 웃으며 물었다. 필자가 먼저 묻고 싶었던 말이라, 한국도 마찬가지라며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현실의 법정은 드라마보다 훨씬 차분하고 절제된 공간이다.

구체적으로 드라마 속 재판과 현실의 재판은 어떻게 다를까.

법정 드라마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소품은 단연 판사가 판결을 선고하며 내리치는 망치다. 돌잔치 때 아기가 망치를 잡으면 커서 판사가 될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망치는 판사를 상징하는 물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정엔 그런 망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법정 어디에도 없고, 사법부 역사상 그런 망치가 사용된 적도 없다.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사용된 도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 주(州)에 따라 망치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하버드 대학은 졸업식 때 단과대별로 자신의 학과를 상징하는 물건, 예를 들어 의대는 청진기, 농대는 농작물 같은 상징물을 들고 입장하는 전통이 있다. 이때 로스쿨은 장난감 크기의 작은 법정용 망치(gavel)를 들고 입장한다. 미국에선 법정 망치가 법조계의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아마 그런 이미지가 국내에도 전해지면서 '판사' 하면 망치를 떠올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이런 망치를 사용하는 곳은 법원이 아니라 국회의사당이나 경매장이다. 국회의사당에선 안건이 통과될 때 의사봉을 3번 두드린다. 경매장에선 낙찰가를 'hammer(망치) price'라 부른다. 망치를 내려치는 행위가 나름의 의미 있는 절차로 남아 있는 공간이다.

법정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장면은 변호사가 변론 도중 벌떡 일어나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모습이다. 현실에선 재판부나 상대방 측에게 무례한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재판 진행을 갑자기 끊는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이 역시 미국 배심 재판 장면 연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배심원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증거 능력이 없는 증거가 제시되거나 부적절한 질문이 나오면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즉시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럴 때 변호사는 영어로 "objection"이라고 말한 뒤 의견을 개진하는데, 이를 "이의 있습니다"로 번역하다 보니 한국에서도 당연히 이렇게 하는 것처럼 오해가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당사자가 재판 도중 이견이 있다면, 절차 전반을 진행하는 판사에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뒤 발언 기회를 얻어 의견을 말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비슷한 오해로, 드라마 속 변호사들은 종종 법정을 활보하며 방청객을 향해 열변을 토한다. 이 또한 미국 배심 재판에서 변호사가 배심원들에게 증거를 보여주며 설득하는 장면을 과장한 것일 뿐이다. 현실 재판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재판장이 바로 제지하며 자리에 앉으라고 할 것이다.

재판부 정면에 있는 법정 문이 벌컥 열리며 핵심 인물이 걸어 들어오고, 이 인물의 증언으로 악을 처단하는 장면은 종종 드라마의 클라이맥스가 되곤 한다. 시청자 입장에선 사이다처럼 통쾌한 장면이지만, 실제 법정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법정은 판사가 앉는 법대에서 출입문이 보이지 않게 설계돼 있다. 하루에만 수십 건의 재판이 진행되며 여러 관계자가 법정을 드나드는데, 출입문이 시도 때도 없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고 나가면 판사가 시선을 빼앗겨 재판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 절차상 '깜짝 증인'이 등장해 결정적 증언을 하는 장면도 현실에선 볼 수 없다. 증인 신문은 신청한 측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충실한 반대 신문의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예정되지 않은 증인이 갑자기 등장하면 상대방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무슨 내용을 아는지 전혀 알 수 없어 공평한 신문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이는 공정함을 생명으로 하는 재판에서 치명적인 절차적 하자로 작용한다. 이와 더불어 그 사건 뒤로 줄줄이 대기 중인 다른 사건들을 다 미루고 예정되지 않은 증인 신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갑작스러운 증인 신청은 재판부에서 받아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 별도 기일을 정해 양측에 준비할 시간을 공평하게 준 뒤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증인 신문이 끝나자마자 판사가 단호하게 판결을 선고하며 정의가 구현되는 듯한 장면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선고는 방대한 기록을 꼼꼼히 살핀 뒤, 주장과 증거를 대조하고 법리 검토를 거쳐 결론을 정하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마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절차를 건너뛴 채 증인 말만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판결을 선고하는 일은 판사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의료인들이 의료 드라마를 보면 세상에 저런 병원이 어디 있느냐고 웃는다고 한다. 법조인들도 법정 드라마를 보며 비슷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현실의 복잡함과 세밀함을 그대로 담기보단, 극적인 재미와 몰입을 위해 존재한다. 드라마의 본질을 현실과 혼동하면 곤란할 것이다.

법정은 사람의 운명을 다루는 진지한 공간이다. 정의의 무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절제와 균형에서 나온다. 드라마 속 화려한 망치 소리 대신, 실제 법정에선 판사의 조용한 한마디가 천근의 무게로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드라마는 재미로 즐기는 대상으로 남겨두고, 현실의 법정에선 냉정하고 정직한 절차의 힘을 믿어야 한다. 법정은 드라마보다 조용하지만, 그 속의 진실은 어떤 극(劇)보다 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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