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배송 금지’, 정확히는 0시~오전 5시 심야시간대 배송을 제한하자는 택배노조가 촉발한 논쟁이 사회적 핫이슈로 떠올랐다. 근로자 건강권을 강조하는 입장과 소비자 편익을 외면하거나 일할 권리를 막아선 안 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대형마트 규제처럼 쿠팡 성장 '제동' 걸리나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새벽배송 금지 주장은 거의 전적으로 쿠팡을 가리키고 있다.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 예방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다. 업계 관계자들은 “택배사는 새벽배송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이커머스 업체 이해관계가 더 크다”고 했다. 커머스 업계 내부에서도 이번 사안을 새벽배송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쿠팡의 이슈로 보고 있다.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민주노총과 택배노조가 이번 이슈를 제기한 것은 근로자 건강권 문제 외에도 암묵적으로 (쿠팡의) 야간배송 단가를 올려야 한다는 내부 목표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쿠팡의 근로조건은 평균 이상”이란 평가도 나오지만 야간배송으로만 좁히면 단가 자체가 떨어진다는 게 업계 전언. 다만 쿠팡 새벽배송은 물량이 많아 배송기사의 전체 수입은 늘어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유통업계에선 과거 골목상권 이슈가 대두되자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법제화한 유통산업발전법과 유사한 형태로 이번 논란이 전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 0시~오전 10시 영업시간 제한 규정을 통해 오프라인 매장뿐 아니라 온라인 주문·배송까지 금지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규정으로 인해 대형마트 손발이 묶인 사이 쿠팡·컬리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새벽배송 시장을 보다 손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업계는 그간 폭발적 성장을 거듭해온 쿠팡 또한 이번에 일종의 ‘성장세(稅)’를 치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도 유통산업발전법이 만들어지며 제동이 걸리지 않았나. 이번 이슈로 인해 쿠팡도 심야시간대 배송 금지까진 아니더라도 새벽배송 단가 인상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천천히 배송'에 보상 준다면 인식 바뀔까
일련의 사회적 논란을 차치하고 보면 쿠팡으로 대표되는 새벽배송은 일상 필수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새벽배송이 금지될 경우 맞벌이 부부 등의 장보기는 어떡하냐”는 반문이 대표적이다. 워킹맘 김모 씨는 “퇴근 후 집안일 한 뒤 당장 다음날 아침 가져갈 아이 학교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데, 쿠팡 새벽배송이 없다면 막막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다만 이처럼 갈급하지 않은 품목의 경우 새벽배송이 ‘기본값’일 필요는 없단 지적도 나온다. 쿠팡도 배송일자를 지정할 순 있으나 쿠팡을 사용하는 와우 회원 상당수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월 구독료를 내면 횟수 제한 없이 무료 새벽배송을 받아볼 수 있는데 굳이 늦게 배송시킬 이유가 없다. 때문에 새벽배송 물량이 과도하게 몰리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변화 사례도 있다. 제반 배경이나 여건은 다소 다르지만 일본의 경우 물류 문제 완화를 위해 소비자가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배송을 택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야후 쇼핑은 구매자가 최단 배송일이 아니라 ‘며칠 늦게 배송(여유로운 배송)’을 선택하면 지연 일수에 따라 전자화폐인 페이페이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사실상의 가격 인하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야후 쇼핑 자체 조사 결과 구매자 절반가량이 늦은 배송을 택했다. ‘서두르지 않는 주문’도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인센티브를 제공한 게 핵심이다.
국내 역시 새벽배송이 기본이되 더 늦은 배송일자에 받으면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인터넷 서점 등의 사례가 존재한다. 이 같은 형태는 추후 소비자 구매를 유도해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측면도 있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무조건 새벽배송 금지 찬반만 내세울 게 아니다. 인센티브 제공으로 소비자에게 적절한 유인을 제공하고 기업이나 근로자도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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