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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1등 악단 안 원해요” 체코 필 대표가 밝힌 폭발적 발전의 비밀은

입력 2025-11-28 17:25   수정 2025-11-28 17:52

세계 3대 악단의 방문으로 클래식 음악계가 들썩였던 서울의 가을, 체코 필하모닉은 거대 악단의 공연을 앞두고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체코만의 음악색을 뚜렷이 지키면서 수준급 악단을 일궈낸 비결을 다비드 마레체크 체코 필하모닉 대표에게 직접 물었다.



동유럽의 구수함과 서유럽의 정갈함을 모두 품은 곳. 유럽 지도 한가운데에 있는 체코는 그런 곳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사이에 낀 이 나라는 주변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체코스러움’을 지켜야만 했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98%”. 마레체크 대표가 밝힌 체코 필 내 체코 국적자의 비중이다. 이렇게나 뚜렷한 민족성은 단원 출신지가 다양해지면서 악단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요즈음의 대형 악단 트렌드완 결이 다르다. 체코 필은 체코 음악의 자존심이다. 정부기관인 문화부가 이 악단을 후원한다. 프라하의 스메타나 홀에선 매년 5월이면 세계 정상급 악단들이 찾는 ‘프라하 봄 국제 음악제’가 열린다. 체코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행사다. 여기서 체코 필이 연주하는 스메타나 ‘나의 조국’은 이 축제를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된 지 오래다.

어수선한 악단을 바꾼 마레체크의 선택

영국 음악 매체인 그라모폰은 지난해 ‘올해의 악단’으로 체코 필을 꼽았다. 이 악단의 상임지휘자이자 음암감독은 소련 태생 미국인인 세묜 비치코프. 그는 체코 음악에 치우쳐 있던 이 악단의 레퍼토리를 말러, 차이콥스키로 넓혔다. 2028년부터는 비치코프의 후임으로 야쿠프 흐루샤가 들어온다. 흐루샤는 베를린 필, 빈 필, 뉴욕 필 등 정상급 악단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약하며 두터운 신망을 쌓았던 지휘자다. 그의 프라하 행은 체코 필이 다른 수준급 악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체코 필의 발전은 14년 전과 비교하면 경이로울 정도다. 마레체크는 2011년 체코 필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했다. 당시의 악단은 혼란스러웠다. 주 2회씩 열었던 공연장의 객석 점유율은 60~65%에 그쳤단다. “1990년 이후 20여년간 음악감독의 잦은 교체가 악단의 개성과 명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어요. 1990년에 벨로흘라베크가 감독 자리를 맡고 2년 만에 게르트 알브레히트로 수장이 바뀌었죠. 그러고 4년도 안 돼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로 감독이 또 교체됐습니다. 즈데넥 마칼, 엘리아후 인발도 상임 지휘자를 했지만 오래 가지 않았죠.”

분위기를 만회하고자 체코 필은 1990~1992년 음악감독을 맡았던 벨로흘라베크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는 2006년부터 BBC심포니 상임지휘자로 활약하면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날린 체코인 지휘자였다. 한국으로 치면 정명훈이 유럽에서 활약하다가 국내 악단을 다시 맡은 셈이었다. 2012년 그가 체코 필로 돌아오자 비로소 악단에 무게감이 잡혔다. “벨로흘라베크가 오자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일하던 체코인 연주자들도 체코로 돌아왔어요. 그가 2017년 타계하기 전까지 함께 악단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죠.”



유명 지휘자의 귀환으로 얻게 된 국민적 관심을 마레체크는 놓치지 않았다. 체코 필은 커뮤니케이션 부서를 따로 꾸리고 스폰서 유치와 대외 홍보를 위한 인력을 집중 배치했다. 이 덕분에 예산에서 민간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의 부임 전과 비교해 약 4배로 늘었다. 공연은 주 3회로 늘렸음에도 오히려 좌석 점유율이 매진에 가까운 수준으로 뛰었다. 마레체크 대표는 “악단이 지역사회의 큰 지지를 얻으면서 시즌권 구매자도 늘었다”며 “시즌권이 아닌, 단일 회차로 나가는 티켓은 전체 티켓 물량의 30~40%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습파’ 비치코프 vs ‘행복 전도사’ 흐루샤

벨로흘라베크가 악단의 기틀을 다시 세웠다면 그의 뒤를 이어 10년간 체코 필을 지휘하게 된 비치코프는 악단의 명성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마레체크 대표가 악단에서 기억하는 비치코프의 첫모습도 인상 깊다. “비치코프는 교향곡 하나를 놓고 18번이나 리허설을 했어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극적’이었네요. 그는 ‘교향악단은 규모만 큰 실내악단’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단원들에게 ‘서로 소리를 듣고 어떻게 소리를 낼지 서로 의견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죠. 한 시즌 동안 치른 리허설 횟수를 따져보면 체코 필이 최고일 겁니다.”



비치코프의 연습량은 녹음 작업에서도 드러났다. 녹음 일정이 있을 때 그는 우선 콘서트홀에서 리허설을 한다. 이어 같은 곡으로 공연이나 투어를 다녀온다. 그러고 다시 리허설을 또 한다. 녹음은 그 다음이다. 여러 번의 실황과 리허설로 완성도가 극에 달한 작품을 앨범에 담는다. 마레체크 대표가 “강으로 비치코프가 뛰어든다면 단원들도 따라 뛸 것”이라고 할 정도로 지휘자의 동기부여가 뛰어나기에 가능한 여정이다.

단원들의 매서운 평가도 지휘자의 꼼꼼한 관리에 보탬이 됐다. 체코 필하모닉에선 매주 모든 단원들이 익명으로 지휘자에게 점수를 매긴단다. 1점이 최고, 5점이 최악이다. 이건 객원 지휘자들도 마찬가지. “놀랍게도 친절한 지휘자들이 받은 점수는 별로였어요. 반면 가끔 엄격하게 다그치며 일하는 지휘자들이 더 좋은 결과를 얻곤 했죠. 지휘자의 성과가 좋으면 단원들도 힘든 과정을 견딜 수 있어요. 이러한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휘자가 악단의 정신 무장을 점검하는 것뿐 아니라 리허설에서 유머와 인간미를 드러낼 필요도 있습니다.”



흐루샤도 악단의 냉정한 평가를 거쳐 선택을 받았다. 지난 6월 체코 필하모닉은 악단의 각 부문 수석 등을 포함해 약 25명 정도가 모여 흐루샤를 차기 음악감독으로 내정했다. “흐루샤는 학생 시절에도 이 악단을 지휘해 본 적이 있어요. 이렇게 오래 관계를 이어가면 서로 관계가 나빠지기도 하는데 되레 공연을 거듭할수록 관계가 좋아졌죠. 부문별 수석들도 모두 차기 감독으로 흐루샤를 지목했어요. ‘그를 데려오면 우리가 행복할거야’고들 했죠.”

체코 음악을 이해하려면 ‘밀란 쿤데라’를 읽어라

체코 음악 하면 떠오르는 곡들이 있다. 드보르자크의 ‘체코 모음곡’이나 지난 10월 체코 필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그렇다. 숲과 계곡, 고성이 어우러진 중부유럽의 정취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마레체크 대표는 체코 음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다른 작품으로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5중주 2번을 권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엔 ‘신세계로부터’가 있다면 실내악에선 이 작품이 있단다.



체코의 가락을 더 깊이 탐구하려는 이들에겐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을 추천했다. 쿤데라는 작곡가 야나체크에 푹 빠졌던 문학인이다. 자신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영화로 제작될 때 ‘야나체크 음악을 삽입해달라’고 감독에게 당부했을 정도였다. 쿤데라는 야나체크의 작품에서 글쓰기의 방향성을 얻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 ‘배신당한 유언들’이나 ‘소설의 기술’ 등에서도 이 작곡가를 수차례 다뤘다.

마레체크 대표는 피아니스트로서 실내악 연주도 계속하고 있다. 체코 필의 내한 공연이 끝난 뒤엔 첼리스트 바츨라프 페트르와 함께 11월 1일 서귀포, 2일 용인, 6일 대구를 찾아 공연도 열었다. 악단 운영과 연주를 병행하는 게 어렵진 않은지 묻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보통 조깅, 등산, 운동, 체스 같은 걸로 스트레스를 풀잖아요. 제 취미는 피아노예요. 피아노를 치다 보면 관리자로서 항상 곁에 둬야 했던 휴대폰에서 벗어날 수 있죠. 단원들이 무대에서 느꼈을 감정도 체감할 수 있어요. 공연장이나 중계 현장의 스트레스를 직접 겪으면서 관리자로서 지나치게 엄격해질 가능성을 줄이는 거죠.”

그는 체코 필이 ‘나의 조국’ 연주를 끝냈을 때 한국 관객들이 보여줬던 환호에 감사를 표하며 인터뷰를 끝맺었다. “체코 필이 세계 최고 악단은 아닙니다. 연주자도 그렇죠. 우린 체코 필에 자연스럽게 맞는 레퍼토리에 집중할 뿐입니다. 차이콥스키, 스트라빈스키, 슈베르트, 멘델스존, 체코에서 태어난 말러의 음악에 말이죠.”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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