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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 몸부림···날 것 그대로의 춤, 호흡

입력 2025-11-13 16:50   수정 2025-11-14 02:21

1913년 5월 29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공연 도중 사람들의 야유와 항의가 빗발치고 관객끼리 멱살잡이가 일어나 경찰이 들이닥쳤다. 무용계 희대의 사건으로 불리는 발레 뤼스의 신작 ‘봄의 제전’ 초연 날 모습이다. 당시 상황은 난장판이었지만 이 작품의 음악도, 춤도 위대한 예술적 유산이 돼 지금까지도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해석으로 새로운 ‘봄의 제전’을 내놓는 건 일종의 예술적 의식과 같다. ‘봄의 제전’이 이번에는 일본 현대 무용 부토로 재탄생했다. 이번 ‘봄의 제전’은 부토를 이끄는 양대 예술단체 중 하나인 다이라쿠다칸의 한국인 무용수 양종예가 안무와 연출을 맡고 직접 출연한 작품이다.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열린 공연을 위해 도쿄를 찾았다.
6년 만의 오픈, 빈 항아리 ‘고추텐’ 안에 담은 부토
매해 도쿄 현지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동네 1위로 꼽는 기치조지. 다이라쿠다칸은 기치조지에 터를 잡고 있다. ‘고추텐(壺中天)’이라는 이름이 붙은 다이라쿠다칸의 이 공간은 연습실이자 부토 공연장이다. 고추텐은 항아리라는 뜻을 지녔다. 머리를 모두 밀거나 때로는 나신의 상태로 춤을 추며 자신의 빈 몸에 춤과 혼을 채워 넣는 부토의 정신이 이 공간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봄의 제전’ 공연 첫날, 1시간 전부터 관객들은 고추텐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일본 내에서는 부토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을 뿐 아니라 가까이에서 날것 그대로의 춤과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고추텐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층이 탄탄하다. 특히 이번 공연은 코로나19로 6년간 문을 닫았던 고추텐이 다시 문을 여는 공연이기도 해서 더욱 그랬다.

고추텐은 30~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 첫날 공연에 약 70명의 관객이 이곳을 찾았고, 총 8회 진행된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 다이라쿠다칸 고추텐의 공연을 기다린 건 일본 현지인뿐이 아니었다. 다양한 국적의 관객이 모여 부토를 보기 위해 빼곡하게 끼어 앉는 상황을 기꺼이 감수했다.

‘봄의 제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 작품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 이름표를 달았을까. 안무가이자 연출자인 양종예는 발레 뤼스의 ‘봄의 제전’을 처음 봤을 때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내부에서 경련이 일어났고, 마치 접신한 것처럼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부토 같았다고 했다. 그 당시 신랄한 비난을 받은 작품이 지금은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듯이 예술의 길은 그런 격렬한 경련의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음악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아티스트 콩스탕 부아쟁과 함께했다. 이번 ‘봄의 제전’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자기 이야기를 부토로 써 내려간, 봄을 향한 제전이다.
검은 칠 ‘구로누리’의 몸, 내면의 어둠과 나란히 서다
무대의 장막이 올라가고 마주친 첫 모습부터 신선한 충격이다. 다섯 명의 부토 예술가가 반나체를 하얗게 칠한 채 매달려 있었다. 마치 안이 텅 빈 인형 같은 그 빈 몸들. 양종예는 ‘이들의 몸을 빌려서 춤을 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 ‘솔라리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첫 장면에는 ‘생각하는 바다’를 통해 자신의 기억과 내면세계, 실존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담았다. 이후 한 명이 합류해서 여섯 명의 부토 예술가는 밀짚모자를 쓴 소녀가 되기도 하고, 밑바닥이 뚫린 양동이를 들고 나타난 여인이 되기도 한다. 양종예는 이 ‘정체불명의 엑스’가 모두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했다.

밀짚모자를 쓴 소녀들의 모습은 연약하고 귀여워 보이지만 그 밝고 순수한 모습은 본인의 가장 용기 있는 모습이라고 고백한다. 구멍 난 양동이를 들고 나타난 여인은 로댕의 조각 작품 ‘다나이드’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이다. 구멍 난 그곳에 영원히 물을 채우는 형벌을 받은 다나이드처럼 예술에, 춤에 목마르지만 채울 수 없는 물을 계속 길어 나르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돼 있었다. 이후에 등장하는 ‘엄마에게’ 장면은 세상에 태어나 첫 번째로 만나는 세계인 엄마라는 존재에게 느끼는 양가감정을 담았다.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미워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감정을 어찌할 줄 몰라 부토 안에 쏟아냈다.


관객을 가장 사로잡은 건 양종예가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보통 부토에서는 온몸을 하얗게 칠하는 ‘시로누리’ 분장을 한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 양종예는 반라의 상태에 검은 칠을 한 ‘구로누리’로 등장한다. 구로누리의 첫 도전이기도 했다. 자신의 어두운 내면, 겉모습이 아니라 그 뒤에 감춰진 모습을 꺼내기 위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구로누리 상태에 피눈물을 상징하는 붉은 실을 눈 밑에 매달고, 멈출 수 없는 춤의 운명을 상징하는 빨간 신발로 등장한 그 모습에는 이 작품의 모든 서사가 농축돼 있었다. 양종예는 춤에 대해 “벗어 버리고 싶지만 발목을 자르지 않으면 벗을 수 없는 빨간 구두의 운명처럼 제게 춤이란 지옥과 천국이 매 순간 교차하는 평생의 굴레이며 눈물”이라고 말한다. 작품 마지막에는 검은 몸 위에 금분이 칠해진다. 미러볼 앞에서 번쩍이는 금빛 몸으로 추는 그의 춤은 제례이자, 숭배이자, 운명이자 그리고 사랑이다.

양종예는 10년 전 무릎 인대가 끊어져 무용수로서 심적 지진을 겪었다. 그런 그가 이제 쉰이 돼 자신을 돌아봤다. 다리에 붕대를 감고 절뚝거리는 부토 예술가의 몸을 통해 그때의 심정을 담았고, 사슴 머리를 들고 계속 춤을 추는 장면에 신념을 담았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이케자와 나쓰키 소설 <스틸 라이프>의 프롤로그 일부를 낭독했다. “네 곁에 서 있는 세계 말고도 또 다른 세계가 네 안에 있다. 너는 가만히 상상해본다. 네 안에 숨어 있다는 그 세계를. 그 광대한 세계는 언제나 어두컴컴하다.”

그 문장을 통해 정물화(스틸 라이프)가 돼 자신을 바라본다. 미워했고, 감추고 싶었고, 쳐다보기 싫었던 어둠을 그것 옆에 나란히 서서 부토의 터널을 통해 바라볼 수 있었다. 벗겨지지 않은 빨간 신발은 그를 예술의 제물로 삼았지만, 기꺼이 제물이 됐기에 빨간 피눈물 사이에서도 운명을 마주할 힘을, 어둠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소녀는 쉰이 됐다. 피눈물을 무대 위에 승화시키며 빨간 신발을 신고 여전히 춤을 출 수 있는 멋진 쉰이 됐다.

도쿄=이단비 무용 칼럼니스트·<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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