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고 싶었던 협상이 아니었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재명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이번 한·미 협상은 버텨내는 과정이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4일 관세협상 백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취임 119일을 보내는 동안 그는 한국 관세협상 카운터파트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대면으로는 최소 21차례, 온라인으로는 3번 만났다. 미국은 매번 "투자를 받아내지 못하면 관세를 내면 된다"며 협상팀을 압박했다. 협상은 '신발끈을 고쳐 매며 마음을 다잡는 과정'이었다는 게 김 장관의 설명이다.
단순한 양자간의 협상, 예의를 차리며 외교적 수사를 주고받는 무역협상이 아니었다. 무역적자국인 미국에 한국이 관세를 무기로, 투자를 강요받는 일방적 협상이었다.
김 장관은 7월 23일 출국을 앞둔 새벽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연락했다. "가겠다"는 짧은 문자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EU와 협상하는 스코틀랜드로 가기로 했다. 미국과 EU와의 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두 골프장 중 한 곳에서 이뤄진다는 언론 보도 때문이었다. 하나는 에버딘 근처, 또 하나는 글래스고 인근 턴베리였다. 에버딘 골프장은 그해 개장한 신규 시설이었다. 김 장관은 에버딘 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런데 출발 1시간 전, 러트닉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턴베리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비행기표를 바꿀 방법이 없었다.
에버딘에 도착한 김 장관 일행은 차를 렌트했다. 밤길을 3시간 달려 러트닉에게 도착했다. 이미 약속시간을 넘긴 시점이었다. 김 장관의 성의를 알아준 듯 러트닉은 김 장관과 두 차례에 걸쳐 협상을 했다. 전체적 협상 내용의 그림이 그려졌다.
러트닉 장관은 EU와 관세협상을 마무리 지었고, 얼마나 EU를 몰아세웠는지 김 장관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김 장관은 "'이렇게까지 미국은 치열하게 협상하는구나'하고 반성했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었다"며 "한편으로는 러트닉 같은 애국자 있는 미국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러트닉을 존경하는 마음 갖고 있다"고 했다.
적장이 위대해 보이면 상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김 장관은 "러트닉이 나를 존경하지 못하게 만들면 협상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신발끈을 고쳐 매며 정신을 다잡는 순간이었다.
미국 측은 철저했고, 자료는 꼼꼼했다. 일본과의 협상에서 얻은 노하우를 모두 동원했다. "불리한 얘기가 나오면 '그럼 관세 25%로 그냥 가자'며 러트닉 장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걸 붙잡으며 만류하는 일이 반복됐다"는 설명이다.
김 장관은 7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러트닉 자택에서 'MASGA 프로젝트'를 핵심으로 한 우리 정부 차원의 한미 조선 산업 협력 구상을 미국 측에 설명했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을 지닌 프로젝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 자택에서 이뤄진 협의 과정에서 미리 준비한 패널을 내보이며 이 프로젝트를 설명했다고 한다. 러트닉 장관 역시 우리 측의 제안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고,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낸다. 8월 1일 관세 부과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10월 4일(현지시각) 김 장관은 극비리에 미국 뉴욕으로 날아갔다. 추석 연휴 기간이었다. 대통령실 핵심 고위 인사만 알고 산업부 대부분 내부 인사조차 몰랐던 전격적 방문이었다. 뉴욕에서 러트닉 장관을 만난 김 장관이 꺼낸 주제는 "한국 외환시장의 민감성"이었다.
그것은 한국이 더 이상 3500억 달러를 마음대로 투자할 수 없다는 신호였다. 환율 변동성 때문이었다. 달러 공급이 급증하면 원화 약세가 심화되고, 이는 국가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김 장관은 "한국 외환시장에 대해 미국이 고려한다는 내용을 팩트시트에 넣은 건 두 정상이 이 점(외환시장의 민감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관은 이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협상이 깨지면 어떻 하나. 순간이 제일 초조하고 사람 피가 마른다고 얘기하는데 심장이 마르는 시간이었다."
이날 오후 경주 APEC CEO 서밋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단에 서서 김정관 장관을 직접 언급했다. "매우 거친 협상가. 솔직히 좀 덜 유능한 사람이 나왔으면 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김 장관은 "보낸 문서에 답이 없어 긴장되던 찰나였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1시께 화상으로 만난 러트닉 장관은 "축하한다(Congratulations)"고 말했다. 이어 대미투자 양해각서(MOU)에 자신이 서명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여줬다. 김 장관도 서명했고, 두 사람은 화상으로 악수하고 허그까지 했다. 한국 경제를 짓눌렀던 관세협상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대미 투자와 프로젝트가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 기업에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관세 인하가 지속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협상은 진정성 있는 대화와 신뢰에 기반한다"며 "앞으로 프로 대 프로로서 신뢰할 수 있는 카운터파트너인 러트닉 장관과 라포가 형성된 게 앞으로 투자처 선정해나가는 데 중요한 의미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김 장관은 앞으로 한국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M. AX(제조업의 AI 전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앞선 협상 과정 귀국길에 "(대미 협상카드가 된) 조선업처럼 한국이 정말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조선업과 같은 확실한 우위가 없다면 더 불리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김대훈/하지은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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