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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처럼 수십만명 배상 땐 兆단위…기업 존폐위기 몰려

입력 2025-11-17 17:54   수정 2025-11-18 01:47

‘소송의 나라’ 미국에서는 상장기업이 매년 수십조원의 집단소송 합의금을 부담한다. 기업의 각종 불법행위를 제재하는 수단으로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이미지·평판 손실까지 감안하면 기업이 떠안는 비용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추진하는 미국식 집단소송이 한국처럼 내수시장이 작은 나라에서 전면 도입될 경우 소송 남발로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美 상위 5개 사건에서 30조원 배상

17일 국제 로펌 두에인모리스&셀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기업 등을 대상으로 제기된 12개 분야 집단소송 가운데 상위 5건의 배상액만 214억달러(약 30조6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식 집단소송이 국내에 도입되면 소비자가 제기한 대규모 소송에서 국내 기업도 ‘조(兆) 단위’ 배상금을 물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식 집단소송은 대표자(개인 또는 단체)가 기업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면 법원이 배상책임의 존재와 범위를 판단해 전체 집단에 동일한 기준으로 배상을 명령하는 구조다. 참여 인원이 많고 단가가 높을수록 총배상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대표 사례는 2015년 제기된 페이스북(현 메타)의 얼굴인식 데이터 불법 수집 사건이다. 일리노이주 페이스북 이용자 세 명은 페이스북이 일리노이주 생체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며 집단소송을 냈고, 법원은 2021년 6억5000만달러(약 9300억원) 규모 합의를 최종 승인했다. 유효 청구자는 약 160만 명으로 1인당 평균 실수령액은 397달러(약 56만원)에 그쳤지만 기업이 떠안은 배상액은 막대했다.
◇韓 증권 분야에서 전 산업 확대 추진
여당 일각에서는 2005년 도입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을 전 산업으로 확대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은 50인 이상의 피해자가 같은 원인으로 피해를 봤을 때 대표당사자(1인 이상)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법원 허가 절차를 거쳐 판결 효력이 전체 피해자에게 적용된다.

현재는 증권·금융 분야에 한정돼 있는데 지난해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와 올해 SK텔레콤 유심 해킹, 롯데카드 해킹 사건 등 대형 소비자 피해 사례가 잇따르면서 금융거래·소비자 피해 전반으로 확대하려는 입법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민주당 강경파는 배임죄 폐지와 동시에 관련 법안 도입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이학영 박주민 차규근 의원 등 5명이 각각 발의한 집단소송 확대 법안이 계류돼 있다. 핵심은 현재 증권 분야에 적용되는 집단소송의 적용 범위를 전면 확대하고, 절차를 미국식 구조에 가깝게 설계해 소비자의 실질적 피해 구제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는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절차 도입, 소송 남발 방지 장치, 옵트인(참여 의사 표시)·옵트아웃(참여 제외 의사 표시) 방식 병행 적용 등이 포함돼 있다.
◇경영계, “남소 악용·소비자 전가”
천문학적 배상금뿐만 아니라 소송 남발 등 제도 악용 우려도 제기된다. 이화실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은 박주민 의원의 소비자집단소송 도입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집단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외 신인도가 저하되는 등 기업 경쟁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현행 공동소송의 운용 개선을 제시한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50인 이상 민사소송 제기 때 성립하는 현행 공동소송을 사건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법원에 배당해 충실한 심리를 거치도록 하는 방식 등으로 집단의 피해 구제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며 “집단소송제 도입 여부는 소송 남발 방지 장치와 허가 요건을 촘촘히 설계한 뒤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선우 LK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국민의 일상과 밀접한 기업일수록 집단소송 리스크가 가격 전가로 이어져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소비자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옵트인 / 옵트아웃

옵트인(Opt-in) :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당사자에게만 판결 효력 있음

옵트아웃(Opt-out) : 별도로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아도 판결 효력이 전체 구성원에게 적용. 판결 적용받고 싶지 않으면 ‘제외 신고’ 해야.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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