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고환율이 상수처럼 굳어지고 있는가?”
한국이 겪었던 1997년, 2008년의 환율 급등은 어떤 원인 때문이었을까.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그 답을 이해하려면 먼저 환율이라는 개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환율은 비교군이 필요하다. 시소에 탄 A가 올라갔다면 B는 내려온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상대 국가가 있고 그 값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수요가 늘거나 공급이 줄 때 값은 더 비싸진다. “외환 시세는 나라 힘만큼 세진다”는 말이 있다. 힘센 나라가 발행한 통화에 글로벌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강달러’가 대표적인 예시다.

예컨대 1달러에 1000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원·달러 환율은 1000원이다. 1000원을 내야 1달러짜리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런데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크게 늘면 달러 값은 올라간다. 우리 돈으로 1500원을 줘야 1달러를 살 수 있게 된다. 이 상황이 달러 강세다. 즉 원화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오른 상황을 ‘환율상승’이라고 표현한다.
정리하자면 ‘강달러’일 때 원화는 약세다. 달러 대비 원화가 약세 압력을 받으면서 환율이 상승했다는 표현으로도 쓸 수 있다. ‘강달러’는 지금의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은 11월 현재 1450원대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2022년까지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였다.
‘강달러’가 나타나는 상황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달러가 귀해지거나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많을 때 강달러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금리인상이다. 미국이 달러에 이자를 더 쳐주니 달러를 가지려는 수요는 증가한다. 2022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가 지금의 강달러를 만든 주요인이다.
미국은 2022년 0.25%였던 기준금리를 2023년 7월 5.5%까지 단기간에 끌어올렸다. 비록 2024년 말부터 금리인하 국면에 들어섰지만, 이전 인상으로 형성된 절대 금리 수준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더욱이 금리인하 속도도 시장 기대에 비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달러 자산에 대한 글로벌 선호가 지속되면서 강달러 압력은 쉽게 약해지지 않고 있다.
한국도 같이 금리인상을 하면 어떻게 될까. 원화의 가치가 올라 달러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한국이 금리를 동결하거나 인하한다면 어떨까. 달러 값은 높아지는데 원화 매력은 떨어지니 원화 가치는 더 평가절하되고 원·달러 환율은 솟구치게 된다. 전문가들이 한·미 간 기준금리 차를 좁혀야 한다고 거듭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한·미 기준금리 역전 현상은 2년 넘게 지속되면서 달러 유출 압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흐름은 단일 시점의 현상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누적된 구조적 변화다.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해외에 가진 자산에서 해외에 진 부채를 뺀 금액)은 2014년 127억 달러에서 올해 2분기 1조300억 달러로 급증했다. 10년 만에 100배 가까운 증가다. 이는 가계·연기금·기업 등 거의 모든 경제주체가 동시에 해외로 눈을 돌린 결과다.
국민연금의 해외 운용잔액은 580조원까지 불었고 개인투자자(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잔액도 4년 만에 8배 증가했다.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역시 817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해외투자 속도가 수출로 벌어들이는 속도를 압도하면서 국내 외환시장에는 ‘달러 가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대미 투자도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한·미 관세협상에서 연간 최대 2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내 투자 집행 계획이 합의된 것이 대표적이다. 협상 팩트시트에 ‘외환시장 안정’ 조항이 명시되긴 했지만, 해외투자 확대는 결국 달러 유출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환율상승에 대해 “해외로 나가는 돈이 많아지면서 국내에서 달러가 부족해진데 따른 현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달러 부족 현상 아래에서는 환율의 ‘경기 자동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는 환율이 급등하면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그 효과로 수출이 늘면서 달러가 국내로 유입된다. 경상수지가 개선되고 대기업 실적이 회복되며 실물경기가 반등한다. 이후 주가·채권가격 상승과 함께 달러 공급이 늘어나면서 환율도 자연스럽게 하락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과거 위기 국면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던 환율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통상 1년 남짓 걸렸다.
하지만 지금처럼 구조적으로 해외투자가 확대되고 국내에서 달러가 빠져나가는 흐름이 고착될 경우 이러한 조절 메커니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도 해외투자 증가세가 이어지면 국내 외환시장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국내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정책적·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1달러에 1000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1500원으로 오른다면 1달러만 주고도 1500원짜리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 값이 저렴해지니 한국 물건을 찾는 미국 소비자들이 늘고 한국 제품 수출은 경쟁력이 생긴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최근 엔화 가치가 급락하자 관광객들이 일본으로 물밀듯이 들어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100엔이고 호텔 하루 숙박비는 1만 엔에 고정돼 있다고 가정해 보면 쉽다. 하룻밤 묵으려면 100달러가 필요하지만 환율이 200엔으로 뛰면 이 비용은 50달러로 줄어든다.
다시 한국의 일반적인 예로 돌아가자.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이 잘되면서 달러가 한국으로 유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적정 수준을 넘는 달러가 공급되면 공급과잉으로 달러 값은 하락하고 원화 가치는 상승한다. 원·달러 환율은 하락, 다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럼 시장에 풀린 달러를 회수해 가격을 방어(환율상승 유도)해야 한다. 이때 등장하는 ‘큰손’이 정부다. 달러를 사고 원화를 풀면 원·달러 환율이 다시금 오른다. 국가는 매입한 달러를 ‘외환보유고’에 고이 저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환율 개입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2015년 중국이 수출 증가에 애로를 겪자 위안화를 기습절하(사흘 동안 환율이 약 5% 가까이 큰 폭으로 상승)해 국제사회의 반발을 가져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위안화의 평가절하가 지속되자 2019년 8월 5일 미국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 이후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미·중 무역갈등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 기업 투자 제한 등의 제재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에 빠뜨린 것도 이 환율전쟁이다. 1980년대는 일본 제조업의 전성기였다. 미국 제조업은 저물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이 경쟁에서 낮은 엔화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 제품은 일본 제품에 가격 경쟁력에서 한참 밀렸다. 미국은 엄청난 대일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미국 정부는 세계 주요국들을 1985년 뉴욕 플라자호텔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일본에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리라고 압박했다.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다. 당시 250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은 이듬해 150엔까지 급락(엔화 가치 상승)했다.
한국이 경험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환율 급등의 원인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원인은 각기 달랐다.
1997년은 한국 경제 내부의 취약성이 문제였다. 대기업 연쇄 부도와 금융기관 부실이 이어지면서 신뢰가 무너졌고 외채도 장기자금이 아닌 단기 차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자금을 회수하자 달러가 빠르게 고갈됐다. 시장에서 달러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고 이것이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반면 2008년 환율 급등은 외부 충격에서 비롯됐다. 미국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기관 전반에 신용경색이 확산됐고 전 세계가 생존을 위해 달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발 충격이 세계 금융시장으로 번지면서 신흥국의 달러 조달 비용이 급격히 높아졌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가 귀해지자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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