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가에 널린 평범한 돌멩이, 방구석에서 품은 공상도 예술가의 눈에 포착되면 작품이 된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에서 열리고 있는 호안 미로(1893~1983)전, 바로 옆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는 리너스 반 데 벨데(42) 전시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타데우스 로팍 전시의 주인공인 미로는 스페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담은 그의 재기발랄한 작품은 전세계 미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근래 들어 국내에서는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기증품인 ‘이건희 컬렉션’에서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등의 작품과 함께 그의 작품이 핵심 서양 미술품으로 꼽히며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로의 조각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다. 1960년대 이후 노년기에 접어들어 제작한 청동 조각 13점이 전시의 주축이다.


미로에게 조각은 ‘깎고 다듬는 것’이 아니라 ‘줍고 합치는’ 과정이었다. 그는 해변이나 산책로에서 발견한 나뭇가지, 돌멩이, 찌그러진 양철통 따위를 작업실로 가져왔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 사물들은 미로의 손을 거쳐 작품이 됐다. 청동이라는 육중한 재료를 쓰면서도 특유의 유머러스한 형태와 거친 질감 덕분에 회화의 다채로움과 리듬감이 입체적으로 살아 있다. “내가 돌을 집으면 그저 돌이지만, 미로가 돌을 집으면 그것은 곧 ‘미로’가 된다”는 말이 미술계에서 나온 이유를 실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공간 연출에 주목할 만하다. 갤러리 공간 디자인을 담당한 양태오 디자이너가 전시장 내부에 한지 벽을 세우고 틈을 내 한옥의 차경(借景)처럼 작품이 은근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프랑스 매그 재단에 있는 미로의 조각 정원 ‘미로의 미로’가 보여주는 미로(迷路)같은 속성을 한국적 미감으로 재해석한 시도다. 황규진 타데우스 로팍 디렉터는 “미로는 생전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과 절친한 친구로 지내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은 작가”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위해 방한한 미로의 손자이자 호안 미로 재단 대표인 호안 푸넷 미로는 “할아버지의 스타일에 딱 맞는 환상적인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7일까지.


바로 옆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는 반 데 벨데의 개인전 ‘큰 메아리’ 역시 평범한 소재와 비범한 결과물의 대조가 돋보이는 전시다. 미술계에서 그는 집에서 잘 나가지 않는 ‘집돌이’로 유명하다. 비행기 탑승을 좋아하지 않아 세계 각지에서 전시가 열리는데도 좀처럼 얼굴을 비추는 법이 없다. 대신 그는 상상력을 활용한다. 스튜디오 안에 정교한 세트장을 짓고 스스로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한 뒤 이를 촬영해 목탄화나 오일 파스텔로 옮기는 식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흐 등 여러 과거 거장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작품 아래에 적힌 글은 그림에 대한 설명 같지만 사실 작품과는 별 상관없는 문구들이다. 이를 통해 반 데 벨데는 진실과 허구의 경계는 무엇인지, 인터넷이나 미디어에서 보는 이미지를 우리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전시는 12월 2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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