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의 지난 21일 주요 발언은 현재 정부 내에서 논의 중인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공식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주 위원장은 이날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해 “수십 년 된 규제를 몇 개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투자를 위해 규제 완화를 요구한 기업을 향해선 “규제 탓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직격했다.
이런 발언을 전해 들은 경제계는 “국가 주도로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 경쟁을 벌이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산업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당 기업들은 “기업 특혜가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규제 완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례로 글로벌 빅테크와 운용사들은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해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세계 1, 2위 시가총액을 다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지난해 9월 400억달러(약 44조원) 규모 AI인프라펀드를 조성한 게 대표적 사례다.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국적의 기업과 금융사들이 펀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해외에서 기업과 금융회사의 공동 투자는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세계 1위 소셜미디어그룹인 메타는 지난달 사모펀드 블루아울캐피털과 데이터센터 개발을 위해 270억달러(약 38조원) 규모로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정부에서 직접 자금 지원을 받는 인텔도 아폴로자산운용으로부터 약 16조원을 투자받아 파운드리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런 추세를 반영해 국내에서도 일반지주회사가 투자전문회사(GP)를 소유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금융회사도 첨단산업에 더욱 쉽게 자금을 보탤 수 있도록 기업과 공동 GP(Co-GP)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도 이런 요청이 잇따랐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스타트업에 돈을 줄 수 있는 곳은 벤처캐피털인데 금산분리로 대기업이 자유롭게 투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 위원장은 이런 금산분리 규제 완화와 관련해 “기업들이 투자회사를 만들어 손자회사를 확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첨단산업 ‘투자 속도전’에서 한번 뒤처지면 주도권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들의 규제 완화 건의에 정부가 전향적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은/김보형/김형규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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