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한 뒤 내년 4월 베이징을 방문하고 이후 시 주석이 미국을 국빈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 30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무역 휴전’을 선언한 이후 첫 통화다. 미·중 관계가 해빙 무드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화 직후 SNS에 “방금 시 주석과 매우 좋은 통화를 했다”며 “이번 통화는 3주 전 한국에서 있었던 매우 성공적인 회담의 후속”이라고 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큰 그림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됐다”고 적었다. 또 “시 주석이 (내년) 4월 베이징에 방문하라고 초청해 이를 수락했다”며 “(시 주석은 그 이후) 내년 중 미국을 국빈 방문해 나의 손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강력하다”고 썼다.
시 주석은 통화에서 “중국과 미국이 협력하면 모두에 이롭고, 싸우면 모두가 다친다는 것은 실천을 통해 반복 증명된 상식”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시 주석은 특히 대만 문제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하며 “(중국으로의) 대만 복귀는 전후 국제 질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고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중국에 있어 대만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미·중 갈등이 완화되면서 중국으로의 미국 농산물 수출도 재개되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이 이날 입수한 선박 운항 일정에 따르면 미국 화물선 두 척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미국산 대두를 싣기 위해 뉴올리언스 인근 곡물 터미널로 향했다. 또 다른 선박 한 척은 텍사스 인근 곡물 터미널에서 중국에 수출될 수수를 실을 예정이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사료용 곡물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서로 집중한 분야는 달랐지만, 지금까지의 갈등을 멈추고 협력해야 한다는 데에 양측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후 SNS에 올린 글에서 “이제는 큰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적었다.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미·중이 향후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빅딜’을 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대목이다.

시 주석이 먼저 통화를 시도한 것은 대만 문제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얻기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이 통화에서 “대만이 중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미·중이 과거 어깨를 나란히 하고 파시스트·군국주의와 싸운 점을 언급하며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성과를 공동으로 지켜야 한다고도 했다. ‘대만은 우리 것’이라는 압박에 다름 아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중국은 나아가 미국이 ‘대만 독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를 원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미·중 정상 간 1월·6월 통화 당시에는 대만 문제가 언급됐지만 9월 통화와 10월 대면 정상회담 때는 거론되지 않았다”면서 “이번에 다시 대만 문제가 언급된 것은 최근의 중·일 갈등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공식 입장은 “양안 문제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한·미가 최근 발표한 공동 팩트시트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침공시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지 여부에 대해 명시적인 언급을 꺼리는 중이다. 에번 메데이로스 조지타운대 교수는 WSJ에 “시 주석은 미국을 대만의 미래에 대한 중국 측 생각에 더 가깝게 끌어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지율 급락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국의 협조가 절실한 시점이기도 하다. 관세 정책의 여파로 상승세인 물가를 잡지 못하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패할 수도 있다. 값싼 중국산 물건을 미국이 끊을 수 없는 이유다. 대두와 수수 등 미국 농산물 수출은 핵심 지지기반의 여론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임시 방편으로 덮어둔 희토류 수출통제 문제에 대한 협정을 마무리하는 것도 관건이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추수감사절(11월27일)까지 희토류 협상이 최종 타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안보 측면에서도 양측은 협력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국이 평화안을 지지하고, 러시아를 압박해 주기를 미국은 기대하고 있다. 이날 통화에서도 대만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시 주석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이야기를 꺼내며 화제를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이에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고 동조했다고 중국 관영 매체들은 전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양측의 군사적 갈등이 과도하게 깊어지는 것도 미국이 바라지 않는 요인이다.
중국도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내수 진작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쉽지 않다. 경기 부양책을 통한 부동산 시장 정상화, 청년 실업 완화, 산업구조 고도화 등의 목표를 내년에 무난히 추진하기 위해선 미국과 무역협상 문제를 너무 오래 끌고 갈 수 없다는 인식을 중국 지도부는 가지고 있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 구도가 지속되면 군사비 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미래 경쟁력의 핵심인 인공지능(AI) 분야의 발전이 더뎌지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미국과 협력관계로 전환한다면 중국이 공들여 온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남미와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서 미국과의 소모적인 신경전을 덜 해도 되는 것도 장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큰 그림’을 언급한 만큼,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선에서 두 정상이 이런 경제 및 안보 이슈를 종합해 서로의 경계를 설정하고 이를 침범하지 않기로 하는 신사협정을 체결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가 본격적인 ‘G2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는 뜻이다. 다만 대만 문제 등에 대해 미국이 중국이 원하는 수준으로 양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러시아와 유럽 등이 양국 간의 협정에 호응할지도 미지수다.
워싱턴=이상은/베이징=김은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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