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콧수염이 근사한 벵골 호랑이의 등장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집어삼킬 듯 벌어진 입과 날렵한 움직임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파커’.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이 쓴 <파이 이야기(Life of Pi)>에서 인도 소년 ‘파이’와 한배를 탄 포식자이자 친구로, 파이와 함께 이야기의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존재다.원작 소설을 무대로 옮긴 ‘라이프 오브 파이’(사진)가 다음달 2일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실제 벵골 호랑이의 골격 그대로 재현된 파커는 26일 열린 기자간담회 겸 시연회에 호랑이처럼 포효하며 위용을 드러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은 소년 파이가 벵골 호랑이 파커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는 227일간의 여정을 담았다.
원작 소설은 2002년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2012년 동명 영화로도 제작됐다. 2019년 영국 셰필드에서 처음 무대화된 뒤 2021년 런던 웨스트엔드, 2023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이 작품은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는 장르를 표방한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담은 영상과 음악, 생동감을 극대화한 퍼펫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돼 뮤지컬, 연극 등 기존 장르로는 규정할 수 없어서다.
파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세 명의 퍼펫티어(인형 조종사)다. 이날 제일 앞자리에 선 퍼펫티어는 파커의 목덜미에 달린 트리거를 조종해 머리와 입, 귀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특수 스펀지 재질(플라스타조트)로 만들어진 15㎏ 무게의 인형 틀을 덮어쓴 가운데 퍼펫티어는 두 손을 파커의 앞발에 낀 채 실제 호랑이처럼 크고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한 명은 뒷다리와 꼬리를 맡아 파커의 육중한 무게가 실감 나게 했다. 케이트 로셀 협력 퍼펫 디렉터는 “세 명의 퍼펫티어가 한 퍼펫 안에 들어가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의 리듬과 사인을 읽어내고 교감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단합력을 기르기 위한 게임을 하고, 평상시엔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기르기 위해 최대한 자주 연습했다”고 말했다. 파이 역은 박정민과 박강현이 번갈아 맡는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동원 에스앤코 대표는 “실제 공연에서 살아 움직이는 리처드 파커와 눈을 마주친 순간 느꼈던 환희와 충격을 한국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은 내년 3월 2일까지.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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