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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10의 26승, 'HR'은 10의 -26승 [AI, 너 내 동료가 돼라]

입력 2025-11-29 08:48   수정 2025-11-29 08:49


국회에서 AI 기업으로 옮긴 지도 벌써 한 해가 훌쩍 지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개발자의 전유물 같던 '클로드 코드(Claude Code)'나 '액티브피시스(Activepieces)'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니, 감개무량하다.

글을 최대한 쉽게 쓴다고 쓰는데도 여전히 어려운 용어가 많다는 독자 피드백을 받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용어가 쏟아지니, 국문 번역하거나 풀이를 달기에 한계가 있어 스스로도 못내 아쉽다.

언론, 정부, 대중, 그리고 플렉스팀 내부 등 각종 대상에 맞는 언어로 일종의 통역을 하다보면 '내겐 판교 사투리가 더 편할까, 법률·행정 용어가 더 편할까'라는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때였다. 두 세계관을 초월하는 한 외계어의 등장은.
AI 기본법 시행령에 등장한 '부동소수점'
지난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AI 기본법)'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나는 시행령은 물론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서 의견수렴을 위해 게시했던 421쪽 분량의 하위법령집까지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서비스와 연관 있으면서도 내내 쟁점이던 '채용'이 고영향 AI로 분류되는지, 그 세부 기준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아직 얼마 읽지도 못했는데 유독 시선이 꽂히는 대목이 있었다. "...학습에 사용된 누적 연산량이 10의 26승 부동소수점 연산 이상인 인공지능시스템으로서..."

'부동소수점? 움직이지 않는 소수점인가? 10의 26승이 어마어마하게 큰 연산량을 의미하는 건 알겠는데, 여기서 소수점이 왜 나오지?' 생경함을 안고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검색해봤다. 역시 그간의 법령에는 등장한 적 없는 용어였다. 전날 저녁에 순환하지 않는 무한 소수, 즉 파이(π)와 관련된 아재 개그를 던지고 즐거워하던 동료가 떠올랐다.


네가 왜 mini에서 나와?
이튿날 오전, 사내 라운지 한 켠에서 혼자 업무를 보다가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전사 백엔드 엔지니어분들의 바이위클리(격주간 회의)에서 바로 그 단어를 또 접한 까닭이다.

"flex mini(플렉스 미니) 데이터 중 부동소수점 방식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시죠. 티끌만 한 오차 가능성까지 원천 차단합시다."

'응? 이 말이 이렇게 흔히 쓰인다고? 이틀을 연달아 접할 정도로?' 백엔드 회의에선 공통수학이 마지막인 문과생의 상식을 넘어서는, 알 수 없는 대화가 치열하게 오갔다. 나는 회의를 마치길 기다렸다가 flex mini 엔지니어분을 붙들었다.

"부동소수점이 대체 뭔데 오늘 또 나와요? 이건 소수점이 안 움직인다는 뜻 아닌가요?"
그분은 웃음을 터뜨리며 정정해주셨다.

"정반대예요. 둥둥 떠다닌다는 부동(浮動)입니다. 영어로는 플로팅 포인트(Floating Point). 자릿수에 따라 소수점 위치가 물 위를 떠다니듯 유연하게 움직인다는 뜻이죠. 그래서 10의 26승 같은 천문학적인 연산량을 계산할 때는 이 방식이 필수입니다."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여기에 치명적인 함정이 있어요. 부동소수점 표준은 애초에 '과학 계산'을 위해 설계된 것이지, '돈 계산'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급여를 다루잖아요. 정확하기 위해선 누구보다 집요해야 합니다."

시행령에 적힌 그 의문의 단어에는 거대한 데이터를 유연하게 처리하는 AI의 본질, 그리고 이를 HR에 적용할 때의 정밀한 고민이 동시에 담겨 있던 것이다.
'10의 -26승'을 향한 집념, 빅데시멀(BigDecimal)
엔지니어분이 출시를 목전에 두고 코드를 최종 점검하던 flex mini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직원 관리 앱이다. 복잡한 노동법·세법에 맞게 주휴수당이나 야간·연장근로수당까지 급여를 정확히 계산해주는 게 핵심이다. 사업장의 종사자 규모나 직원의 고용 형태에 따라, 또 근무한 시간대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적용할 법규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근로계약-근태기록-급여 데이터 간의 오차 없는 연동이 생명인 셈이다.

그런데 데이터베이스가 숫자를 관행대로 부동소수점 방식으로 저장하면, 1원이 0.9999원이 돼버리듯 미세한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빅데시멀(BigDecimal)'을 철칙으로 삼습니다. 쉽게 말해 소수점이 둥둥 떠다니지 못하게 대못을 박아 고정해 버리는 방식입니다. AI가 확률과 근사치로 10의 26승 이상을 계산한다면, 여기서는 돈 계산을 하기 때문에 10의 -26승만큼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죠. 그래서 값을 아예 문자열로 변환해서라도 소수점의 위치를 강제로 고정하는 겁니다."

그는 덧붙여 이것이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도 들려주었다. 2020년 런던 증권 거래소(LSE)가 부동소수점 오류로 45분간 멈춰 서며 수십억 원 규모의 거래량 손실을 입은 사건이나, 독일의 한 은행이 부동소수점 으로 인한 이자 계산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무려 1,200만 유로를 들여야 했던 일화들이다. 코드 속 미세한 오차가 현실의 막대한 자산을 증발시킨 아찔한 기록이었다.
10의 26승과 10의 -26승을 아우르는 일
우리는 'HR 기반 AI 플랫폼'을 서비스하는데, 여기서 AI와 HR은 어쩌면 물과 기름처럼 다른 성질인지도 모른다.

AI는 '10의 26승'의 세계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며 거대한 맥락과 확률을 다룬다. 반면 HR은 '10의 -26승'의 세계다. 특히 급여는 소수점 저 끝까지 내려가더라도 단 하나의 오차가 없어야 한다. 월급이 500만 원인데 AI가 "확률적으로 499만 9999.9999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법령에 등장한 '부동소수점'이라는 단어 하나로 시작된 소동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10의 26승이 넘는 AI의 무한한 연산 능력을 빌려와 조직의 두뇌 역할을 하도록 하되, 그 결과값만큼은 10의 -26승의 오차도 용납 않는 빅데시멀처럼 정밀하게 검증해 내놓는 것.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이 거대함과 정밀함, 확률과 확신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HR 기반 AI 플랫폼의 본질 아닐까.

10의 26승이라는 거대한 파도도, 결국 10의 -26승이라는 단단한 닻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아슬한 세계 속 어느 균형점에서 나는 오늘도 서로 다른 언어를 통역한다.

송지현 님은 가장 레거시한 조직인 국회에서 가장 테크-싸비(tech-savvy)한 조직인 AI HR SaaS 스타트업 플렉스(flex)로 자리를 옮겼다. 이질적인 두 직장에 뛰어든 이유는 다르지 않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일하는 문화를 혁신하고픈 의지 때문이다. 여전히 생경하지만 이미 삶 속에 깊이 들어온 AI와 사람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일터를 그린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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