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여년 역사의 아시아 대표 뷰티기업인 일본 시세이도가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올해 최악의 적자가 예상되면서다. 이처럼 공격적 몸집 불리기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던 아시아 지역 거대 뷰티업체들 시대가 저물고 있다. 국내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형 화장품사도 이런 추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매킨지앤컴퍼니는 “뷰티 소비자, 구매 채널, 제품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바뀌고 있다”며 “브랜드가 과거의 공룡 시절 방식만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시세이도 측은 손실이 커진 주요 원인으로 2019년 약 900억엔을 들여 인수한 미국 스킨케어 브랜드 ‘드렁크 엘리펀트’의 부진 탓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인수 초기에는 ‘클린 뷰티’ 트렌드를 타고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점차 신흥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판매가 급감했다. 올해 시세이도는 이 브랜드에서만 468억엔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이 회사는 코로나 시기 ‘선택과 집중’ 전략 아래 츠바키, 우노 등 저가 브랜드를 매각하고 중·고가 브랜드 강화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팬데믹 시기가 오고 중국시장 경기가 꺾이면서 고가 제품 판매가 꺾였다. 저가 브랜드를 정리하는 사이 중국이나 한국 뷰티업체의 ‘가성비’ 공세는 거세졌는데, 미국에서 인수한 드렁크 엘리펀트 부진까지 겹치며 위기가 심화됐다. 현지에선 시세이도가 중대한 생존 분기점에 들어 섰다는 인식이 나오고 있다.
국내 뷰티기업들 사정도 비슷하다. 한때 국내 대표 화장품 기업이었던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몇 년째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각 사에 따르면 지난해 아모레퍼시픽 뷰티 매출은 3조8851억원, LG생활건강은 2조8506억원이다. 전성기인 2021년 대비 각각 20.1%, 35.8% 급감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35.8%, 83.3%씩 줄었다. 그나마 중국 의존도를 낮춘 아모레퍼시픽은 실적 흐름 나아지긴 했지만 호황기 수준에 근접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주요 뷰티기업들이 시장에서 장악력을 잃어가는 사이에 그 틈새를 한국 인디 브랜드들이 비집고 들어가는 분위기다. 중소형 K뷰티 기업들은 빠른 트렌드 대응과 과감한 의사 결정으로 북미 중심 글로벌 뷰티시장을 집어삼키며 성장하고 있다. 닐슨 IQ에 따르면 2025년 미국 K뷰티 매출은 전년 대비 37% 증가한 2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은 사상 최대치인 55억 달러로, 한국은 미국의 최대 화장품 공급국으로 올라섰다.
울타는 지난 7월 K뷰티 전문 편집 플랫폼인 'K뷰티 월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산 화장품 판매 강화에 나섰다. 화장품 유통업체 세포라도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플래그십 매장 한쪽 벽면을 K뷰티 제품으로 꾸미고, K뷰티 브랜드들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월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도 한국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 증가를 감지하고 진열대에 에센스, 세럼, 마스크팩 등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NIQ에서는 중소형 K뷰티 붐을 조명하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K뷰티 붐을 주도하는 인구통계학적 요인은 고소득 아시아계 미국인 밀레니얼 세대이지만 더 광범위한 계층에서도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틱톡 숍의 글로벌 확장과 각 브랜드의 전략 개선에 힘입어 K뷰티 영향력은 내년에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뉴욕 패션기술대(FIT)의 델핀 호바스 교수도 CNBC에 "(미국 내) 한국산 화장품 시장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유통업체 간) 경쟁이 벌어진다"며 "한국산 화장품은 현재 가장 큰 성장 동력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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