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경제 성장이 상대적으로 둔화한 것이 원화 약세의 핵심 요인입니다.”
실업률 흐름을 기반으로 경기 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삼의 법칙’으로 유명한 클로디아 삼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약세)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에서 고환율 책임을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 탓으로 돌리려는 것과는 다른 시각이다.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해선 “삼의 법칙에 대입해보면 침체 기준선에 한참 못 미친다”고 했다. 최근 미국에서 인공지능(AI) 거품론과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삼 전 이코노미스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AI 거품론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AI 투자는 증가 속도가 빠르고 소수 기업에 집중돼 있어 단기적으로 주가 조정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붐을 이끄는 기업들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닷컴버블 당시 기업과 달리 전반적으로 수익성이 높고 재무 상태도 탄탄합니다. AI는 데이터센터 등 물적 투자 확대를 견인하고 있기도 합니다.”
▷AI 기업이 성과를 낼까요.
“AI가 새로운 범용기술로 자리 잡는다면 생산성 향상은 거의 확실하게 이뤄질 것입니다. 다만 (성과는) 수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 기업 가운데 생산 과정에 AI를 적용하는 곳은 약 10%에 불과합니다. 기술 도입은 시간이 필요하며, 그 속도는 시장이 가격에 반영한 기대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책당국이 AI 규제를 만들 때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품질을 관리할 수 있는 규제를 만드는 겁니다. 전기, 컴퓨터, 인터넷 같은 다른 범용 기술 역시 생산성 측면에서 완전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여부도 시장의 관심입니다.
“3개월 실업률 평균이 지난 12개월 최저점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을 때 경제가 침체에 접어든다는 삼의 법칙에 대입해보면, 현재 격차는 0.2%포인트에 그쳐 침체 기준에 아직 한참 못 미칩니다. 하지만 최근 실업률이 3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이 격차가 커지고 있어 경기 침체 위험이 다소 높아진 상황입니다.”
▷12월 미국 기준금리는 어떻게 될까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Fed 내에서 다수의 반대 의견이 제기될 겁니다. 설령 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당분간은 마지막 인하가 될 수 있습니다. Fed는 이미 올해 두 차례 금리를 내린 데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은행 총재가 추가 인하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음에도 다른 (통화정책) 위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Fed 내에서 의견 차이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Fed의 목표가 서로 상충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물가 안정 목표치보다 높은 반면 노동시장은 둔화되고 있습니다. Fed 인사들이 인플레이션과 고용 사이의 균형점을 서로 다르게 평가하면서 최적의 정책 경로에 대한 견해가 갈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관세가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까.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부터 Fed 목표치(2%)보다 높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올해 물가 둔화 흐름이 멈춘 주된 이유는 관세 인상으로 상품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관세가 가격에 완전히 반영되면 상품 물가는 (다시) 정상화될 것입니다. 관세가 2차 효과를 통해 추가 물가 상승을 유발할 위험은 크지 않습니다. 다만 기업과 가계가 인플레이션 목표를 2%가 아니라 3%에 더 가깝다고 기대해 의사결정을 하기 시작할 경우 그 자체가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원·달러 환율 급등이 이슈입니다. 환율을 좌우할 핵심 변수는 뭐라고 봅니까.
“한국의 경제 성장이 상대적으로 둔화한 점이 달러 대비 원화 약세의 핵심 요인입니다. 미국 대법원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 부과된 상호관세의 적법성을 곧 판단할 예정입니다. 관세가 일시적으로라도 중단된다면 한국의 대미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다른 변수는 없습니까.
“내년에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백악관이 Fed를 압박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인하하도록 만들 수 있을지 여부입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달러가 약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의 법칙
클로디아 삼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이코노미스트가 고안한 경기 침체 판단 지표. 최근 3개월 실업률 평균이 지난 12개월 최저점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아지면 경기 침체 신호로 본다. 1950년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11차례 경기 침체 가운데 1959년 한 차례를 제외하고 모두 이 기준에 부합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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