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임상과 연구를 잇는 ‘의사과학자’ 생태계 확충에 본격 드라이브를 건다. 내년부터 의대와 이공계 대학원 간 공동 학위과정을 마련해 지원하는 등 신규 프로그램이 신설되면서 의사과학자 양성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5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 랑데부홀에서 ‘2025 의사과학자 NET-WORKSHOP’을 개최해 신규사업 추진 방향에 대해 소개했다.복지부는 2019년부터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을 통해 학부부터 박사학위 취득에 이르는 전주기 교육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의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을 동시에 갖춘 ‘의사과학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을 통해 165명의 전일제 박사학위과정 학생이 장학금과 연구비 등을 지원받았고, 총 79명의 의사과학자가 배출됐다.
내년부터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2개의 신규 사업을 추가한다. 새롭게 도입되는 ‘K-MediST(케이-메디스트) 지원’ 사업은 의대와 이공계 대학원 간 공동 학위과정을 마련해 공동 교육을 실시하고, 공동 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와 성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바이오헬스 부문 의과학 분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의사과학자 도약 프로그램’도 도입된다. 해외 바이오헬스 석학 초빙, 국내 젊은 의사과학자의 글로벌 연구기관 방문 연수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한편 연구 아이디어가 투자 유치와 사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연구자 개인의 성장과 기술사업화 경로를 지원하는 게 목표다. 이와 함께 20년간 매년 5명, 총 100명의 우수 의사과학자를 발굴해 시상하기로 했다.
정은영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사업 적정성 재검토 절차를 거쳐 2032년까지 약 5154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학부 단계부터 연구에 관심을 갖고 의사과학자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체계적 교육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의대생에게는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부분제 대학원생에게는 연 2000만원 내외, 전일제 대학원생에게는 연 5000만원 내외의 연구활동비를 지원해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한다.이날 행사에서는 우수 연구자 시상과 함께 젊은 의사과학자들이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전일제 박사과정에서 우수한 연구 성과를 거둬 복지부 장관상을 받은 정영락 연세대 미생물학 박사과정생은 “전공의 시절부터 사업에 참여하며 연구 방향에 대한 기초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며 “이 덕분에 전일제 박사과정에 진입하자마자 본격적인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참여자부터 교수, 의대 1학년 학생 등 다양한 의료계 관계자가 참석했다. 이에 풀타임으로 연구만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는지에 대한 솔직한 얘기도 오갔다.
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한 조아라 연세대학교 미생물학 박사과정생은 “나중에 진료를 못 따라갈까 봐 불안감이 나도 있다”면서 “지금도 이 선택 맞는 걸까 생각하게 되는데, 교수님들이 ‘임상 따라가는 데 얼마 안 걸린다’고 말씀해주신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여진(울산대), 이현수(연세대 원주), 정동영(포항공대) 박사과정생에게 복지부 장관상이 각각 수여됐다.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을 통해 배출된 젊은 연구자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강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 박사는 “의사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이 사업에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며 “전문의 취득 후 안정적인 임상 진로를 선택할지, 연구자의 길을 지속할지 고민이 많겠지만, 사업 지원 덕에 다중오믹스를 하는 의사과학자로 남았다”라고 말했다.
박상준 연세대 의과대학 바이오뇌공학 박사는 연구 과정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이전에는 공학적 배경이 전혀 없었고, 프로그래밍도 모르는 전형적인 의사였다”며 “기초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공학 연구에 뛰어들어 박사 과정 초반 1년 반 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님이 ‘연구실에서는 의사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라’라고 조언해주신 말이 큰 전환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박순상 아주대 의생명과학 박사는 의료계와 과학계의 간극을 언급했다. 그는 “두 분야의 언어가 서로 다르다”며 “의료 시스템을 발전시키려면 과학과 의료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 시절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에 무전공으로 입학하고 졸업 후 아주대 의과대학으로 편입했다는 그는 “기초 프로그래밍을 배운 경험이 이후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며 “반대로 해부학·조직학·생리학은 과학자 입장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분야인데, 의대에서 임상 맥락과 함께 배운 경험이 큰 경쟁력이 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연구자들 간 네트워킹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의사과학자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나눔과 동시에, 후배 연구자들에게 조언을 전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사업 현황과 내년도 추진 방향 설명에 나선 김희정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사과학자정책팀장은 “의사과학자의 길이 외롭기도 하지만 함께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진로이기 때문에 선배들이 후배들을 잘 끌어주고, 저희도 가능한 많은 도움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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