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국회에 따르면 여야가 지난 3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킨 간첩법(형법 98조) 개정안은 이달 본회의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일본 전시형법을 모방해 만들어진 뒤 한 번도 수정된 적 없는 조항이 개정의 첫 관문을 넘은 것이다.
현행 간첩법은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경우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적국을 사실상 북한으로 한정한 탓에 북한 이외의 외국으로 국가 기밀을 유출하더라도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개정안은 이런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98조 2항을 신설해 적국의 범위를 명확히 했다.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해 외국 등의 지령·사주·의사 연락하에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이를 방조한 자를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그동안 기존 법망을 피해 간 기술 유출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중국인 유학생 3명은 해군작전사령부와 미국 항공모함 등을 드론으로 촬영해 중국 소셜미디어에 유포했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군 기지를 촬영·유포했지만 북한을 위한 행위는 아니어서 간첩법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법사위 관계자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내부 기밀 유출뿐 아니라 사이버 해킹 등 정보 수집 행위 자체도 처벌할 근거가 마련돼 국가 안보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산업계도 법 개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중국 일본 등 외국 기업에 산업·과학 기술을 빼돌리는 산업스파이 행위를 엄벌할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산업스파이는 산업기술보호법을 통해 처벌했다. 이 법에 따르면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면 최대 15년까지 징역형 선고가 가능하지만 법정에서는 징역 1~2년 또는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법조계 얘기다.
해외 기업은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반도체, 배터리 등 국내 기술 탈취를 시도해 왔다. 산업통상부가 국회에 제출한 ‘업종별 산업기술·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현황’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가핵심기술 33건, 산업기술 110건이 해외로 유출됐다. 이로 인한 피해 추산액은 23조2700억원에 달했다.
이번 개정안이 간첩죄 적용 대상을 ‘국가 기밀’에 한정한 것은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방위산업 분야와 국가 첨단기술 영역이 보호받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면서도 “기업들은 간첩죄의 범위를 산업 기밀 등 경제안보 영역까지 확대하길 바랐지만 이 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법사위 처리는 여야 협치가 모처럼 작동한 사례로 평가된다. 국민의힘에서는 윤상현 의원과 나경원 의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 출신 박선원 의원이 관련 법을 발의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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