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세 50만원짜리 임대주택이 있다고 하자. 집주인들이 얻는 ‘불로소득’이 너무 많다는 여론에 따라 정부가 재산세율을 높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 집의 1년 치 재산세가 50만원 올랐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면서 월세를 55만원으로 높였다. 그리고 재산세를 50만원 더 냈다.
이때 세금을 ‘낸 사람’은 집주인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부담한 사람’은 누구일까. 집주인은 재산세를 50만원 더 냈지만, 월세 수입도 60만원 늘었다. 세입자는 월세를 60만원 더 냈다. 집주인이 더 낸 세금 50만원은 따지고 보면 세입자가 낸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분명히 집주인에게 세금을 부과했는데, 실제 세금 부담은 세입자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세금 부담이 다른 경제 주체에게 옮겨가는 것을 조세 전가라고 하고, 조세 전가의 결과로 세 부담이 여러 경제 주체에게 나뉘는 것을 조세 귀착이라고 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공시가격 현실화가 주택시장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주택 공시가격이 10% 상승하면 전셋값이 1~1.3% 오른다고 분석했다.
법인세도 조세 귀착이 잘 일어나는 세금이다. 정부와 국회가 법인세율을 올린 것은 돈 잘 버는 기업이 세금을 많이 내게 하려는 의도겠지만, 법인은 세금을 ‘납부할’ 수는 있어도 ‘부담할’ 수는 없다. 늘어난 법인세는 주주, 근로자, 소비자가 나눠 부담한다.
세금은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대당 2000만원짜리 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100만원의 새로운 세금을 물린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수요가 감소하면서 자동차 가격이 1950만원 정도로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세금 100만원까지 더해 실제 소비자 부담은 2050만원으로 높아진다. 자동차 회사의 대당 매출은 2000만원에서 1950만원으로 감소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다. 이처럼 세금이 시장의 자유로운 거래를 방해해 경제적 총잉여가 줄어드는 것을 사중손실이라고 한다.
법인세율을 올렸을 때 법인세 수입이 늘어나려면 세율 인상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투자와 생산 활동을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세율 인상은 기업의 생산 활동을 위축시킬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세수는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결국 정부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세율뿐이다. 세율을 올리거나 내리는 것만으로는 세수가 늘어날지 줄어들지 알 수 없다. 세금을 누가 부담하게 할지도 정부가 정할 수 없다. 섣불리 세율을 올렸다가는 엉뚱한 사람에게 부담을 준다. 따라서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적정 세율이 얼마인지 늘 고민해야 한다.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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