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기업 합병 기준으로 회사 자산과 미래 가치 등을 반영한 공정가액을 적용하는 방향의 법 개정을 공식화했다. 이는 계열사 간 합병 시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곳에 주가가 저평가된 우량 계열사를 합병시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등의 문제를 막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간 국내에서 계열사 간 합병은 최대주주인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법이 개정되면 오너 일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합병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시각이다.
동원그룹은 2022년 지배구조 개편에서 지주회사 동원엔터프라이즈와 중간지주사 격 계열사 동원산업을 합병하면서 일반주주 의견을 반영해 동원산업 합병가액을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당초 시장가인 24만8961원으로 책정했다가 상장사인 동원산업의 가치를 더 높게 봐야 한다는 의견에 기준을 순자산가치로 바꿨다. 합병가액은 38만2140원으로 53.5% 상향됐다.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상장회사 합병 시 공정가액 적용’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총 7건이다. 금융위원회가 모든 상장사 합병에서 공정가액을 적용하는 방안의 연내 입법 추진 필요성을 당에 전달하면서 법 개정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정가액은 현 주가와 현금·토지·투자 지분 등 회사가 보유한 전체 자산의 가치, 회사의 영업이익·시장점유율·성장성 등 미래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한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상장사 합병 시 직전 1개월간 평균 주가 등을 기준으로 하는데, 앞으로 시장가 외 다양한 요소를 반영한 공정가액을 써야 한다. 산정한 가액이 순자산가치보다 낮으면 순자산가치가 하한선이 된다. 예컨대 현 주가가 1만원인 기업이라도 자산 가치가 주당 2만원, 미래 가치가 주당 1만원이라면 합병가액은 최소 2만원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당정은 중립적 제3자의 외부 평가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공정가액의 공정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또 외부 평가 기관을 선정할 때는 감사의 동의를 받거나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회사는 최종평가 결과 보고서 및 합병안에 대한 이사회 의견서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법제화된다.
최근 대기업 사이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안착한 계열사 간 전략적 합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중복상장’ 논란이 이어진 뒤로는 사업적 연관이 있는 회사를 하나로 모아 시너지를 내는 전략적 합병이 재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HD현대인프라코어’ ‘SK온-SK엔무브’ 합병 등이 대표적인 예다. 금융당국이 기업 인수합병(M&A) 등 경영상 결정에 개입할 여지가 더 커지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최해련/박종관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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