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폴란드발 대규모 수출 계약은 K-방산의 위상을 변방의 제조 기지에서 글로벌 메이저 플레이어로 단숨에 격상시켰다. FA-50, KF-21의 비상과 K2 전차, K9 자주포의 쾌속 질주는 우리에게 ‘방산 강국’이라는 달콤한 수식어를 선물했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다. 화려한 수주 실적의 이면에는 인구 절벽, 기술 패권 전쟁, 그리고 공급망의 불안정성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방위사업청에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계약 관리가 아닌, 10년 뒤의 생존을 담보할 냉철한 ‘미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방위사업청이 가장 시급하게 고민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기술 추격자(Fast Follower)’의 종언과 ‘기술 선도자(First Mover)’로의 전환이다. 그동안 우리는 선진국이 검증한 재래식무기 체계를 빠르게 국산화하고 개량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이 전략은 가성비와 납기를 중시하는 기존 시장에서는 유효했다.
그러나 미래 전장은 다르다. AI, 양자컴퓨터, 극초음속 미사일 등 게임체인저가 지배하는 전장에서 ‘빠른 모방’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항공기 엔진, 첨단 센서 등 핵심 코어 기술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언제든 우리의 생산 라인이 멈출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방위사업청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보수적인 R&D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 실패 가능성이 높더라도 성공 시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파괴적 혁신’ 기술에 과감히 투자하는 한국형 DARPA 모델의 정착이 시급하다.
두 번째 과제는 수출의 지속가능성과 ‘부메랑 효과’에 대한 대비다. K-방산의 고객들은 이제 단순한 구매자를 넘어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는 양날의 검이다. 당장 수출 성사를 위해 핵심 기술을 무분별하게 이전할 경우 어제의 고객이 내일의 강력한 경쟁자로 돌변하여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는 부메랑 효과를 맞을 수 있다. 방위사업청은 ‘무기 판매’를 넘어 ‘가치 사슬 공유’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단순히 완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30년 이상 이어질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을 선점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토털 솔루션’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기술이전의 수위를 조절하는 정교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안보 파트너십은 강화하되 우리의 기술적 우위는 지키는 ‘전략적 모호성’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세 번째는 인구 절벽이라는 내부의 적(敵)과 싸우는 ‘무인화 혁명’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병력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지금의 방위사업 구조가 병력 중심의 재래식무기 체계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리 좋은 무기를 만들어도 이를 운용할 군인이 없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미래 전략의 핵심은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방사청은 무기 획득 단계에서부터 ‘병력 절감 효과’를 핵심 성능 지표(ROC)로 설정하고, 민간의 빠른 AI 및 로봇 기술을 군에 즉각 수혈할 수 있도록 획득 절차의 속도전을 감행해야 한다. 10년 걸려 무기를 개발하면, 배치될 즈음엔 이미 구형 기술이 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급망 안보(Supply Chain Security)를 간과해선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생산 능력이 곧 전투력임을 증명했다. 티타늄, 텅스텐 등 방산 핵심 소재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 K-방산의 공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 화려한 체계종합 업체의 실적 뒤에 가려진 중소 협력업체들의 취약한 생태계를 보강하고, 전략 물자의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것은 방사청이 챙겨야 할 기본적인 책무다.
지금의 호황은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골든타임’일지 모른다. 세계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와 국방비 증액으로 방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이제 단순한 ‘조달청’의 역할을 넘어 국가 안보와 미래 먹거리를 동시에 설계하는 ‘안보전략의 컨트롤타워’로 거듭나야 한다.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기술, 수출, 인력, 공급망의 4각 파도를 넘을 때 K-방산은 비로소 진정한 글로벌 안보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