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패션업계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소비심리 위축, 이상고온 등 각종 악재로 삼성물산 패션부문, 한섬,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대기업 패션사는 일제히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인력 구조조정과 브랜드 철수에 나선 곳도 많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성장한 패션사가 있다. 이랜드월드다. ‘스파오’ ‘미쏘’ 등 가성비 SPA(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랜드월드 패션부문은 지난달 자사 물류센터 ‘화재 리스크’를 딛고 올해 4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 전성기를 누린 당시 밟은 ‘매출 4조원’ 고지를 1~2년 안에 다시 달성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화재 발생 1주일 만에 추가 물량 생산
9일 이랜드월드에 따르면 지난달 미쏘와 뉴발란스의 월 매출은 각각 1년 전 동기보다 19%, 15% 늘었다. 스파오도 소폭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달 이랜드월드 최대 규모의 충남 천안 패션물류센터에 화재가 발생해 신발과 의류 등 1100만 점이 소실됐음에도 달성한 실적이다.
화재 리스크를 이겨낸 배경엔 이랜드월드의 ‘2일 5일 생산 시스템’이 있다. 이랜드월드는 국내 공장에서 테스트 샘플을 소량 생산해 시장 반응을 보고(2일), 이후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 파트너사에서 대량 생산하는(5일) 시스템을 운영한다. 화재 발생 직후 이랜드월드는 이 방식으로 1주일 만에 해외 파트너사에서 추가 물량을 생산해 들여왔다.
11월에도 성장세를 이어가 올해 이랜드월드 패션부문 매출은 작년(3조5139억원) 규모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커졌다. 3분기 기준 누적 매출은 2조5311억원(중국 포함)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한섬 등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 4조원 클럽 재입성 ‘청신호’
이랜드월드는 뉴발란스와 SPA 브랜드를 앞세워 불황을 뚫었다. 이랜드월드 패션부문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라이선스 브랜드 뉴발란스는 올해 매출 1조2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그다음으로 규모가 큰 스파오는 1만원대 티셔츠와 플리스, 2만원대 패딩조끼 등 가성비 의류를 팔아 2년 연속 매출 6000억원대가 예상된다. 미쏘도 출혈 경쟁이 심한 여성복 시장에서 두 자릿수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주요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걸지 못하는 모서리와 양옆 공간, 이른바 ‘데드존’에 가방·액세서리 등 잡화를 배치해 공간 효율성을 높인 결과다.
이랜드월드 브랜드가 고르게 성장하면서 1~2년 내 ‘매출 4조원 클럽’에 재입성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랜드월드는 2010년대 초중반 중국 시장에서 고속 성장해 패션 기업으로선 드물게 매출 4조원 시대를 열었다. 이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코로나19 등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
다만 뉴발란스의 직진출은 변수로 꼽힌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뉴발란스가 이랜드월드 패션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빈자리를 메울 브랜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