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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내가 가장 먼저 안 '첫눈'

입력 2025-12-10 17:46   수정 2025-12-11 00:07

“소연아, 이것 좀 봐!”

남편인 이병일 시인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안방 침대에 누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비몽사몽 중에 올려다봤다. 뭘 보라는 걸까.

“안 보여?”

“뭐가?”

남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첫눈!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너 주려고 가져왔어.”

남편의 머리 위에 쌓여 반짝이는 흰 눈이 그제야 보였다. 남편이 내 손을 자기 머리 위로 가져갔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그야말로 첫눈의 감촉이다. 활짝, 눈꽃처럼 차고 환한 웃음이 방 안 가득 번졌다. 몸살을 앓다가 잠든 시간이 이토록 산뜻하게 깨어날 수도 있구나. 누가 시인 아니랄까 봐, 남편은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갔다가도 첫눈을 가져온다. 나에게 보여주려고 밖에서 일부러 더 오래 눈을 맞은 것도, 머리 위에 쌓인 눈을 현관문 앞에서 털어내지 않은 것도 몽땅 다 시적이다.

윤제림 시인은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라는 시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한강에 눈이 내린다/지하철에 눈이 내린다/지하철이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서 주는 것은/고마운 일이다.” 남편 덕분에 안방에서 첫눈을 맞이한 순간과 슬며시 포개어 본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 속에도 눈이 내린다. 친구들의 메시지가 소복이 쌓여 있다. 답장하려 자판을 누르면서도 눈 밟는 기분이 된다. 왜 이렇게들 눈을 좋아할까.

“눈 와요.” 가장 먼저 안 것을 전하는 목소리가 첫눈을 닮았다. 첫눈이 온다는 것을 나무가 가장 먼저 안다. 강가의 조약돌이 가장 먼저 안다. 낮달이 가장 먼저 안다. 아니, 내가 기다려온 첫눈은 내가 가장 먼저 안다. 그 누구와도 다른 나의 첫눈이 나를 기다려왔기 때문에. 첫눈을 가장 먼저 안다는 말은 이렇게 모두 진실이 된다. 요 며칠간, 김장김치를 씹으면서도 눈 밟는 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기다렸던 첫눈이다.

어둑어둑해진 길목마다 내려앉은 첫눈을 아파트 복도에서 내려다봤다. 그때 ‘뜨리오’ 단톡방에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눈쓰름’ 매수전 작가가 대문 앞에 쌓인 눈을 쓸다가 만든 눈사람 사진이었다. 뜨리오는 작년 겨울에 그림 그리는 최산호, 매수전 작가와 내가 만든 뜨개질 모임인데, 요즘은 이렇게 딴짓하느라 바쁘다. 셋이서 놀이 삼아 작고 귀여운 콘테스트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늦가을엔 구례 화엄사 가는 길에 주운 낙엽으로 ‘낙엽 콘테스트’를 열었다. 하물며 첫눈인데,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첫눈 기념 작은 눈사람 만들기 어때?”

눈사람도 추위를 껴입는 사람. 나도 아파트 복도 난간에 쌓인 눈을 뭉쳐 몸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추위 속에서 머리가 맑아진다. 날이 추워져야 눈이 오고, 눈이 와야 겨울 산도 목마름을 달랜다. 내가 만든 작은 눈사람이 마음에 든다. ‘작은 눈사람 콘테스트’에 출품하기 위해 눈사람 이름도 짓고 작품 설명도 썼다.

“이름: 핑크부리눈사람새. 이 핑크부리눈사람새는 우리 아파트 10층 복도 난간에서 태어났습니다. 키스하는 것을 좋아해서 핑크 부리를 가졌습니다. 도토리를 너무 사랑해서 눈동자가 도토리가 되었습니다. 성냥개비 날개에는 불을 붙일 수 있으나 평생 단 한 번 불 날개를 가질 수 있어 평소에는 걸어 다닙니다.” 아쉽게도 우승은 하지 못했다. 우승자는 빨간 열매로 된 눈, 코, 입을 가진 흰 눈토끼 겨울전토사를 만든 최산호 작가다. 그렇지만 참가자 세 명뿐인 이 작고 귀여운 콘테스트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인생은 즐겁다. 기말시험 공부 중인 우리 집 중2도 눈발처럼 쏟아지는 졸음을 피하기 위해 눈을 만지고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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