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관계자가 말했다. 11월 28일 드디어 베일을 벗은 ‘약가제도 개선방안’이 내년 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심의를 마친 뒤 내년 7월 시행될 전망이다.
방안의 초점은 제네릭(화학 약품 복제약) 가격을 대폭 인하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혁신 의약품에 대한 보상 체계를 강화해 제약업계 경쟁력을 높이고 건강보험 재정을 개선하려 한다.
제약업계에선 비상이 걸렸다. 전통 제약사들의 수익에서 제네릭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이 각 제약사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최근 혁신 신약 성과와 매출 상승세에 고무된 업계 분위기에는 확실히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다.
제약업계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보고 신속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약가 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 5개 단체가 모여 비대위 구성을 결의하기도 했다.
비대위는 “약가 개편안이 국내 개발 신약의 글로벌 진출과 세계 3위의 신약 파이프라인 보유, 사상 최대 실적의 신약 기술이전 등 가시적 성과로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을 준비하는 기업들의 혁신 동력에 타격을 주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비대위는 12월 12일까지 CEO 대상 긴급 설문조사를 마친 뒤 연말까지 정부의 약가 개편안이 시장에 미칠 영향과 업계 목소리를 전할 예정이다.

11월 28일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에 부의된 ‘약가제도 개선방안(안)’은 중증·희귀질환 혁신 신약에 대해 신속등재를 추진하고 혁신형 제약기업을 우대하는 한편 제네릭 약가를 조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약업계는 제네릭 약가 조정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산정을 현재 53.55%에서 40%대로 대폭 줄인다. 즉 이제 오리지널 가격이 1000원이라면 제네릭 가격은 기본적으로 535.5원에서 400원대로 낮아진다.
기본가산은 폐지되며 제네릭의 경우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지정된 곳이나 원료를 직접 생산하는 경우, 필수의약품 등에 한해 최대 68%를 가산해준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비율이 상위 30%에 들면 최대를 적용받을 수 있다. 또 11번째 등재되는 제네릭부터 약가를 5%p씩 감액하는 등 계단식 조정의 수준을 강화한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을 개선하고 제네릭 기업들이 현행 약가제도에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제네릭 약가가 주요 선진국(OECD)의 2.17배(2022년 캐나다 약가검토위원회)이나 신약 건수나 연구개발비 투자에서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케미컬(화학 약품) 복제약인 제네릭은 국내에서 의약품 사용의 절반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미 공개된 오리지널과 같은 성분으로 동일한 효능을 내는 게 쉬워 제품이 난립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제네릭은 처방 의사에 대한 ‘불법 리베이트’ 제공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이번 개편 대상에서 빠졌다. 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는 살아 있는 세포에서 단백질을 뽑아 생산하므로 동일한 복제약을 만들기 불가능하며 오리지널과 동일한 임상 단계를 모두 거쳐야 한다. 따라서 진입장벽이 높은 편인 반면 가격이 비싸고 부가가치가 크다. 이 때문에 바이오의약품 생산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매우 높은 편이다.
결과적으로 새 제도의 피해를 보는 곳은 국내 기업 가운데 케미컬(화학 약품)을 주로 유통, 생산하는 전통 제약사 중 특히 제네릭 매출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 제약사가 될 전망이다.
대형 제약사들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대형 제약사 상당수는 사업 포트폴리오가 일반의약품부터 전문의약품, 화장품부터 의료기기까지 다양한 편이다. 그러나 사업 비중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처방 대상인 전문의약품을 대체할 분야가 없다. 이들 전문의약품 상당수가 제네릭이거나 도입 약물이며 시장에서 독보적인 효능으로 평가받는 자체 오리지널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마진율 측면에서 일반의약품이 전문의약품을 따라갈 수 없다”며 “약가 인하는 대형 제약사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인 혁신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를 기술수출한 업계 1위 유한양행조차 마찬가지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유한양행 올해 3분기 처방약 비중은 연결매출의 52.4%로 대부분 제네릭이거나 글로벌 제약사의 오리지널을 도입한 제품이다. 로수바미브, 트윈스타, 비리어드 등 일부 오리지널조차 특허만료가 된 상태로 향후 더 저렴하게 공급될 제네릭들과 가격경쟁을 벌여야 한다.
국내 전통제약사 중에는 유한양행을 필두로 GC녹십자, 종근당,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이 ‘연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상태다. 이들 기업은 수익 증가를 바탕으로 연구개발에도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제약바이오는 대형 제약사와 중소 바이오텍 간의 기술이전과 협업이 활발한 분야에 속하기도 한다. 렉라자 역시 바이오텍인 오스코텍으로부터 후보물질을 도입해 존슨앤드존슨(J&J)에 기술이전(L/O)과 미국 출시까지 성공한 사례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글로벌 임상을 통해 세계시장에 ‘블록버스터’(연매출 10억 달러 이상 의약품)를 출시하기는 역부족이다. 신약 개발에는 통상 10년이 더 걸리는데 글로벌 임상에 드는 비용만 수천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이전해 ‘대박’을 터트리는 것이 국내 기업들에는 최고의 성공 공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내 기업들은 이번 약가 인하로 인해 “미래 ‘글로벌 빅파마’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익이 떨어지면 결과적으로 시급성이 떨어지는 R&D 예산을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R&D 투자를 하면 약가를 더 올려준다고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이다.
정부는 여러 명분을 들었지만 악화하는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해소하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제도 개편을 통해 국민 건강권 보장성은 높이고 제약산업의 혁신적 성과 창출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개편안에서는 혁신 성과 창출을 위한 국내 산업 지원 정책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약가 인하를 통해 절감되는 재정이 다국적 제약사로 흘러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국내 제약사에는 그저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일괄 약가인하 정책으로 여겨진다”며 “향후 세부 제도 설계 과정에서는 혁신 성과 창출을 위한 지원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결국은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불만이다. 현재의 유명 제약사들도 일반의약품이나 제네릭 판매로 돈을 벌어 지금에 이르렀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R&D 투자를 늘려가며 앞으로 대형 제약사로 성장할 수도 있는 중소 제약사들의 성장동력이 꺾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가제도 개편 비대위 관계자는 “제약사마다 사업 구성이 다르고 아직 정부 개편안에 따른 영향도 제대로 분석된 바는 없으나 업계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가 제약업계 의견을 새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등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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