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2기 체제의 핵심 키워드는 ‘비은행 경쟁력’이다. 하나금융의 비은행 기여도는 13%. KB와 신한 등 금융지주들이 비은행 부문에서 30~40%대 기여도를 확보하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하나금융은 사실상 하나은행의 개인기로 끌어가는 구조에 가깝다. 비은행 경쟁력,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고리는 하나증권이다.
이 호황에서 하나증권은 예외다. 하나증권의 3분기 영업이익은 654억원. 업황 자체가 워낙 좋다 보니 전년 대비 86.9%나 증가한 수치이지만, 경쟁사 대비 저조한 수준을 감추기 어렵다.
같은 분기에 신한·KB·NH 등 금융지주의 증권사들은 모두 1000억원대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비은행 실적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금융지주의 비은행 사업을 사실상 좌우하는 증권 부문에서 하나증권만 유독 흐름에서 뒤처졌다(2024년 출범한 우리투자증권은 논외다). 업계 안팎에서 “하나증권은 영업을 안 했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나금융 내부에서도 이러한 부진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비은행 부문의 부진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박종무 하나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아픈 질문”이라는 표현을 썼다. 박종무 CFO는 “원인을 살펴보면 전반적인 톱라인은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고 있지만 증권, 캐피탈 등에서 아직 투자 손실을 인식한 부분들로 바텀라인이 부족해지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비은행 계열사들의 매출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지만 증권과 캐피탈에서 투자 손실이 반영되며 순이익이 기대만큼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CFO는 비은행 부문의 의미 있는 개선이 이루어지는 시점을 2027년쯤으로 전망했다. 함 회장이 제시한 비은행 수익 비중 30%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하나증권이 그룹의 ‘금쪽이’가 된 것은 2023년부터다. 그룹 내에서 비은행계 맏형으로 하나은행과 함께 ‘투톱’ 역할을 했던 하나증권의 영업이익은 2023년 고꾸라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가 본격화한 해다.하나증권의 리스크도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관련 투자·대출 규모)였다. 2023년 하나증권은 2개 분기 연속 500억원에 가까운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분기 합산 약 1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당시 증권업계 전반이 부동산 PF발 ‘어닝쇼크’ 국면을 맞았지만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초대형 IB 중에서 두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곳은 하나증권이 유일했다. 해외 부동산과 대체투자 자산의 손상 가능성이 커지자 충당금을 선제적으로 쌓은 결과였다.
이 충격은 일시적 요인이 아니라 하나증권이 지난 수년간 부동산 금융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며 늘려온 자산 구조의 후폭풍이었다. 당시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전 세계적으로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재택근무 확산으로 상업용 오피스 수요가 줄어들면서 해외부동산 가격이 급락했다. 여기에 금리 부담까지 겹치며 해외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가 흔들리자 하나증권의 실적도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예컨대 메리츠증권은 기업금융·부동산 중심 구조에서 리테일·WM 비중을 본격적으로 확대했고, 한국투자증권 역시 브로커리지 감소세를 구조화금융·인수금융 등 ‘다른 날개’로 보완하며 흔들림 없는 성장성을 유지했다.
신한투자증권도 변신을 꾀했다. 2023년 당시 신한투자증권은 투자상품 관련 충당부채를 대거 적립하며 하나증권과 같은 분기에 나란히 적자전환(3분기 당기순손실 185억원)했다. 그러나 이후 브로커리지·IB·자기매매가 동시에 살아나며 시장 호황을 수익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천상영 신한금융지주 CFO가 “본원적 사업 영역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경상 체력이 회복됐다”고 밝힐 만큼 빠른 구조 개선이 이뤄졌다. 분기 1000억원대 이익을 내는 회사로 돌아온 것이다.
하나증권도 수익구조 다변화를 내걸었다. 강성묵 대표는 2023년 취임사에서 “WM, IB, S&T, 글로벌 등 각 사업 부문별 균형 성장으로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겠다”고 밝혔다. 2년이 지난 지금 기대만큼의 전환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나증권은 여전히 해외 대체투자를 포함해 부동산금융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25년 6월 말 기준 하나증권의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자기자본의 약 79%로 대형 증권사(61%) 평균을 크게 웃돈다. 이 중 해외 비중만 56%, 부동산 PF 중 중·후순위 비중이 56%에 달한다. 구조적으로 손익 변동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윤기 한신평 애널리스트는 “부동산 업황 부진과 건전성 분류 기준 강화로 자산건전성 관리 부담이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최성신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 또한 “2024년 이후 충당금 부담은 다소 완화됐지만 해외부동산 회복 지연으로 추가 손실 가능성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러한 자산 구조가 시장 호황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체력’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IB·WM·운용부문 잠재력은 유지되고 있으나 부동산 리스크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익 기여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성신 선임연구원은 “하나증권은 리테일 부문 시장 지위가 높지 않아 위탁매매수지가 정체돼 있고 부동산 PF와 해외 상업용 부동산 침체로 투자자산 건전성이 악화할 경우 추가 대손비용 발생 가능성도 상존한다”며 “신규 수익원 확보와 리스크 관리 강화에 따른 실적 대응력과 수익성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리스크가 실적 발목을 잡고 있는 동안 경쟁사들은 브로커리지·WM·IB에서 이미 한 단계 앞서가고 있다.
이 상황은 수익성 지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자기자본 5조원 이상 9개 증권사의 ROE를 비교하면 하나증권은 3.09%로 최하위다. 키움(18.15%), 한국투자(13.63%), 삼성(12.18%), 메리츠(8.47%) 등은 물론이고 자기자본이 하나증권보다 작은 신한투자증권(4.02%)보다 ROE가 낮다. 금융업에서 ROE는 기업의 ‘본원 수익력’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다.
일각에서는 하나금융의 인사·조직문화 요인도 실적 부진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강성묵 대표는 1993년 은행에 입행해 30년 넘게 커리어를 쌓은 ‘정통 은행맨’이다. 2021년에 자산운용사로 자리를 옮기며 첫 투신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대표를 거쳐 하나증권 대표가 됐다. 시장에서는 “은행식 리스크 관리 문화가 증권사의 비즈니스 확장성에 한계를 준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업 내부에서 오랜 기간 경쟁적 환경을 거친 ‘야생형’ 인재들이 이끄는 증권사와 비교하면 사업 확장 속도나 시장 감각에서 현저한 차이가 난다는 지적이다.
그룹은 다른 선택을 내렸다. 하나금융은 강 대표가 리스크 정리와 조직 재정비에 기여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며 12월 10일 연임을 결정했다.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강 대표가 수익성 저하 국면에서 비상경영체제 전환과 조직개편,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 위기를 극복했고 실적 반등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부동산 리스크를 털어내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충당금 부담이 있었던 만큼 일관된 리스크 관리 전략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단, 이러한 결정이 투자자의 눈높이에 부합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하나금융지주 종목토론방에는 “증시 호황기였는데도 KB·신한처럼 증권 실적이 버팀목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증권사 실적이 실질적인 주가 모멘텀으로 작용한 KB·신한과 달리 하나금융은 시장의 상승 국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하나금융이 목표로 내세운 ‘비은행 30% 시대’도 증권 부문의 정상화 없이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3연임에 성공한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와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이 동시에 안은 과제다.
강 대표의 한 방도 남아 있다. 발행어음 사업 진출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10일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의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지정 및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심의·의결했다. 오는 17일로 예정된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최종 인가 여부가 결정된다.
하나증권의 발행어음 사업 진출은 중장기적으로 수익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긍정적 요인으로 평가된다. 다만 발행어음 인가가 곧바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조달 자금을 어떤 자산에 배분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후 운용 전략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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