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휘자 김선욱이 경기 필하모닉 예술감독 활동을 마무리했다. 내년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해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한 프로그램이 경기 필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정기 공연이 됐다. 지난 11일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에서 공연 시리즈인 ‘마스터즈 시리즈 Ⅵ-비창’으로 관객에게 황홀한 멜로디를 선사했다.
이들의 협연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습곡을 변용한 작품인 만큼 통통 튀면서도 매혹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피아노 의자에 앉은 조성진은 첫 변주의 연결감을 살리며 고양이가 전력을 다해 쥐를 잡듯 건반 위를 손가락으로 활보했다. 건반을 원점으로 삼아 상반신을 둥글게 말았다가 강조할 음에서 놀란 고양이처럼 온몸을 튀어 올려 건반에 에너지를 더할 땐 소리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하는 집념이 느껴졌다.
이날의 조성진은 소리로 공예를 하는 장인에 가까웠다. 같은 셈여림 소리를 표현하더라도 조음의 시작과 끝을 연주 흐름에 따라 긴밀하게 조절하면서도 자신만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10번 변주의 마지막에서 낸 청명한 고음은 속이 빈 유리구슬이 부딪친 듯 맑기까지 했다. 변주 24개를 마친 피아니스트에게 김선욱은 물개 박수를 건네며 환호하는 관객과 함께했다.
알레그로로 빠르게 풀어나가는 2악장은 침울할 4악장의 예비적 성격이 강했다. 악단은 4분의 5박자로 풀어가는 왈츠의 삐걱거림과 들뜬 똑딱거림을 한껏 살리는 대신 어딘가 비극이 깃들어 있는 기쁨을 표현하는 쪽을 택했다. 생명이 소멸하는 듯 짙은 저음이 깔리는 마지막 4악장에선 비장함이 가득했다. 콘트라베이스의 마지막 잔향마저 사라졌을 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미동 없는 지휘자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김선욱은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도 같은 레퍼토리로 관객을 만났다. 연주 직후 그는 마지막을 실감한 듯 눈물을 쏟아냈다. 단원 한 명씩 일으켜 세우며 박수를 보냈고, 점차 감정이 고조돼 눈물로 얼굴이 흥건해졌다. 이렇게 그가 예술감독으로서 선보이는 경기 필의 마지막 정기 공연을 끝냈다. 김선욱은 13일 자신의 SNS에 “많은 고심 끝에 연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지난 2년은 제 음악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지휘자로 피아니스트로서 계속 성장한 모습으로 또 인사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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