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장의 사진’은 역사적 전기가 된 사건을 다룬 작품이 대부분이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후 버섯구름(1945),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1969), 네이팜 투하로 화상을 입고 절규하는 베트남 알몸 소녀(1972), 톈안먼 광장에서 홀로 탱크 행렬을 가로막고 선 중국 남성(1989) 등. 이 중 20세기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꼽히는 게 ‘마천루 위의 점심’이다.합성사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기에도 아찔하다. 고층 건물 건설 현장의 한 가닥 철제 보(거더)에 걸터앉아 있는 11명의 남자. 1932년 9월,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건설 당시 69층 260m 높이에서의 모습이다. 사진 제목과 달리 점심을 먹고 있지는 않으나, 사진 속 인물들은 건물 공사 현장에서 실제 일하고 있는 노동자다.
사진은 건물 홍보를 위해 연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물 표정이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아일랜드와 캐나다 원주민 모호크족 등 이민자들로 추정된다. 특히 모호크족은 유전적으로 고소공포증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1930년대 록펠러 빌딩 외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뉴욕의 초고층 건물 건설에는 모호크족 노동자가 대거 투입됐다. 안전장치가 전혀 없이 철골 위에 기름이 흘러 있는지 등만 확인하고 작업을 했는데도 사망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소수였다고 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답게 숱하게 패러디됐다. 국내에서도 배우 류승룡이 철골 위에서 짜장면을 먹는 배달앱 CF 등에 활용됐다. 타임이 매년 이맘때면 발표하는 ‘올해의 인물’로 ‘인공지능(AI) 설계자’를 선정했다. 표지 사진으로는 마천루 위의 점심 사진에 AI 시대를 주도하는 빅테크 CEO 8인의 모습을 합성해 실었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젠슨 황, 샘 올트먼, 데미스 허사비스 등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들이다. 마천루 위의 점심 사진 속 노동자들의 위험을 무릅쓴 용기가 20세기 번영의 초석이 됐다면 ‘AI 설계자’ 사진 속 CEO들의 도전 정신으로 21세기 새 역사가 열리고 있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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