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포티와 넥스트포티는 어떤 분야에선 치열하게 대립, 반목하는 세대로 인식되지만, 소비 시장에서는 트렌드를 주고받는 협력자에 가깝다. 유행의 씨앗은 넥스트포티가 뿌리지만, 이런 흐름을 시장의 주류로 안착시킨 주체는 대개 인구와 구매력을 갖춘 영포티 세대였다.
최근에는 영포티 세대가 먼저 열어둔 시장에 넥스트포티가 합류하며 판이 더 커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넥스트포티의 발길이 끊긴 시장은 성장 동력을 잃고 빠르게 식는 모습도 관측된다. 넥스트포티의 구매력이 세진 않더라도 판세를 키울 키를 쥔 '스윙보터'로 떠오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영포티 세대가 '큰 손'이라는 점을 노리고, 넥스트포티가 주 타깃이었다가 연령대를 높이려는 기업들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패션업계 1위 애플리케이션(앱) 무신사가 그렇다. 2022년까지만 해도 40대의 무신사 앱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안드로이드+iOS·중복포함) 비율은 14.6%였다. 40대 비중은 매년 늘어나더니 올해 1~11월까지는 18.1%가 됐다. 반면 20대 MAU는 39.4%에서 36.0%로 줄었다.
무신사는 본래 20대의 주 무대라 할 수 있는 e커머스만 하다 영포티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백화점 진출 및 오프라인 확장에 나서고 있다. 최근 용산에서 연 초대형 패션 편집숍 '무신사 메가스토어'에서는 기존 타깃인 젊은 층에서 나아가 40대까지 겨냥한 '무신사 워크&포멀' 존을 꾸렸다.

40대는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방식도 넥스트포티에 가까워졌다. 그간 4050세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앱 1위는 모두 '네이버밴드'였다. 그런데 그중 40대가 이탈해 올해부터 '인스타그램'이 1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와이즈앱·리테일은 "40대가 젊은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SNS(인스타그램)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네이버 밴드의 문자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각 중심 SNS로 40대의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전문가들은 영포티 세대가 먼저 움직인 넥스트포티의 문화를 수용하는 경향성이 있다고도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문화를 선도하고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세대다. 반면 4050세대는 상대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며 "자신의 생활 방식과 현실적 조건 등을 고려해 2030세대의 문화를 수용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테무가 한국에 진출하자마자 가장 먼저 핵심 소비층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40대였다. 2022년 초만 하더라도 테무의 20대와 40대 MAU는 각각 35만과 46만이었다. 그런데 가장 최근인 지난 11월에는 각각 180만명과 200만명으로 늘었다. 처음에는 30% 차이가 났으나 최근에는 격차를 좁혀가더니 10% 정도 차이게 그치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가성비라면 빠질 수 없는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도 마찬가지다. 다이소 앱인 '다이소몰'의 연령대별 MAU를 분석해보면, 2023년까지만 해도 40대 30.3%, 30대 27.1%, 20대 20.9% 순이었다. 그런데 2024년에는 20대 29.0%, 30대 26.1%, 40대 23.2% 등 순으로 넥스트포티가 역전했다. 올해 1~11월도 20대 31.8%, 30대 24.9%, 40대 20.8% 등 순으로 20대 비중이 더 많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고물가 시대 초 가성비에 가장 민감하며 반응하며 생존 전략을 모색한 게 40대였다면, 20대는 이를 디지털이라는 자신의 언어로 새로운 문화로 확산시킨 세대다. 이들은 각종 SNS에서 다이소나 테무에서 산 물건들과 관련된 콘텐츠를 확산시켰다. 일종의 '가성비 실험실'처럼 말이다. 지난해부터 SNS에선 다이소 주방용품을 결합해 만든 '다이소 DIY 쇠테리어'나 다이소 화장품 관련 콘텐츠가 그 예시다. 지난해 다이소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2% 증가한 3712억원이었다.

최근에는 그간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던 다이소의 의류 품목이 20대의 환심을 사고 있다. 한 20대 여성이 "다이소 기모 내복 이렇게 좋다고?"라고 올린 영상이 온라인에서 확산하며 이목을 끌었다. 영상 속 이 여성이 입은 상·하의는 각각 5000원이다. 누리꾼들은 "싼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반응을 내놨다.
이밖에 유튜브 등에서는 '실시간 품절 중인 다이소 가성비 대란템' 등 제목의 이름으로 다이소의 플리스 등을 추천하는 영상이 조회수 30만회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한 유튜버는 "두께감 하며 푹신한 털까지 5000원이라고는 전혀 안 믿긴다. 퀄리티가 장난 아니다"며 극찬했다. 다이소 공식 홈페이지를 비롯해 온라인에선 이러한 제품에 대해 "가성비 짱이다. 따뜻하다", "이건 물건이다" 등 긍정적인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이른바 '어른이' 혹은 '키덜트'(어른 아이) 사례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다. 2023년 '슬램덩크' 광풍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원작 슬램덩크의 리메이크 극장판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영화로 개봉된 후, 만화책의 주 소비층이던 40대 외 2030세대 구매량이 급증한 것이다. 한세예스24홀딩스는 분기 매거진을 통해 "영화 개봉 전까지는 '슬램덩크 신장재편판'을 찾는 주요 구매층이 40대 남성(33.9%)으로 나타났지만, 영화 개봉 이후 올 상반기에는 20대 여성(24.5%)과 30대 여성(20.0%)의 구매 비중이 가장 높았다"고 전했다.

여전히 월간 90만명의 사용자가 찾는 포켓몬도 성인 중 30대 25%, 20대 24%, 40대 19% 순으로 많이 한다. 2022년까지만 해도 어렸을 때 포켓몬을 보고 자라온 40대가 약 24%로 가장 많았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스크린골프 예약 앱 1위인 골프존의 올해 누적 20대 MAU는 8.6%로 한창 젊은 층 사이에서 골프가 인기였던 2022년과 비교해 약 2%포인트 떨어졌다. 30대는 같은 기간 3%포인트(21.9%→18.7%) 넘게 하락했다. 40대와 50대 비중은 각각 2~4%포인트 늘어났다. 고점 대비 20대와 30대 사용자는 30%가 빠져나갔다. 40대와 50대는 각각 60만명과 30만명 안팎에서 움직이며 비슷한 수준을 유지 중이다. 골프존의 영업이익이 계속 악화되면서 2021년 말 19만원까지 올라가던 주가는 현재 6만원까지 떨어졌다. 업계 2위였던 카카오VX는 2023년 적자 후 2024년 적자 폭이 확대됐고, 올해 초 매각을 추진했으나 기업 가치 하락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이밖에 골프웨어 등을 취급하는 기업들이 철수하는 등 업계 파장이 커지고 있다.
명품 시장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한때 2030세대 사용자가 절반을 차지하던 트렌비의 MAU는 40대가 42%로 압도적으로 높다. 한때 25%에 달하던 20대 사용자는 이제 절반 수준인 15%에 그치고 있다. 대표적인 럭셔리 쇼핑 앱인 발란과 머스트잇에서도 40대는 각각 30%, 29%로 가장 큰 비중으로 집계됐다. 팬데믹 당시 넥스트포티를 등에 업고 장밋빛 미래를 그리던 트렌비, 발란, 머스트잇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49%, 29%, 50% 급감했다. 국내 1위를 다투기도 하던 발란은 정산금 수백억을 지급하지 못하고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됐다.
앤데믹(풍토병화) 후 고물가에 2030세대의 럭셔리 구매력이 사실상 소멸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심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4050세대는 유행을 필터링하는 세대"라면서 최근 현상에 대해선 "4050세대는 품질이 좋거나 기능성이 있는 제품을 중시하고 2030세대는 보기에 예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것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현보/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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