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약 11조원 규모의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짓는다. 미국 국방부(전쟁부)와 상무부, 현지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합작법인(JV) 형태다.
중국과의 전략광물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이 미국 내 핵심 공급망의 한 축으로 편입되는 상징적 투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려아연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제련소 투자안을 의결했다. 회사는 공시에서 “미래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해 미국 내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 국방부(전쟁부) 및 상무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테네시주 클락스에 대규모 제련소를 공동 투자로 건설한다”며 프로젝트명을 ‘미국 제련소(U.S. Smelter)’로 명명했다.
사업은 미국 내 종속회사인 ‘크루서블 메탈즈’를 통해 추진된다. 총 투자액은 10조9500억원(약 74억달러) 수준이다.
미국 정부와 전략 투자자가 출자하는 ‘크루서블 JV’를 통해 약 2조8600억원을 조달하고, 고려아연이 약 8600억원을 직접 투입한다. 나머지는 미국 정책금융 대출과 보조금, 재무적 투자자 대출로 충당한다. 회사는 정책금융 및 대출 규모가 최대 6조9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칩스법에 따라 상무부 보조금도 최대 3000억원가량이 거론된다.
상무부·국방부 등 미국 정부 다수 기관이 JV 출자에 참여하는 만큼 사실상 최대 주주는 미 정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은 JV 지분 9.99%를 보유한다.
미국 정부는 이번 투자를 전략광물 공급망 재편의 핵심 사업으로 보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테네시에서 추진되는 고려아연의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transformational deal)”이라며 “미국은 고려아연의 생산 확대분 중 일부에 대해 우선적 매수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고려아연은 이번 투자를 위해 제3자배정 유상증자도 단행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11일 설립한 미국 합작법인을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해 약 19억4000만달러(약 2조8500억원)를 조달한다. 해당 자금에는 미 국방부와 상무부, 방산 관련 전략적 투자자(SI)가 참여한다. 고려아연은 전날 이사회를 통해 유상증자 안건을 포함한 미국 투자 관련 주요 의사결정을 모두 마쳤다.
이번 결정은 영풍·MBK와 진행 중인 경영권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직접 참여하는 합작법인이 주요 주주로 자리 잡을 경우, 고려아연은 단순 민간 기업을 넘어 미국의 안보·공급망 전략과 연계된 기업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변동을 둘러싼 시도가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이사회 구성과 신주 발행의 적정성을 둘러싸고 현 경영진과 영풍·MBK 간 공방이 한층 격화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테네시 제련소는 온산제련소와 유사한 복합 제련소로 조성된다. 아연·연·구리와 금·은은 물론 안티모니, 게르마늄, 인듐 등 미 지질조사국이 지정한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해 총 13종의 금속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계획이다. 연간 원료 110만톤을 처리해 아연 30만톤, 연 20만톤 등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입지는 미국 내 60여 곳을 검토한 끝에 물·전력 조달과 물류 접근성이 좋은 테네시로 정했다. 기존 니어스타 제련소 부지를 인수해 인프라를 재구축하고 첨단 공정을 적용한다. 회사는 미국 내 유일한 아연 제련소가 50년 가까이 운영돼 전문 인력 승계가 가능하고 전력비 절감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2029년부터 단계적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한다.
최윤범 회장은 “미국 내 통합 제련소 건설을 계기로 항공우주, 방위산업에 필수적인 핵심광물을 공급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입지를 공고히 할 것”이라며 “한미 경제안보 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영풍·MBK는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예고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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