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17일 10:2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회계법인에 입사해 수습 회계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일로 기억한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반도체 산업 지원을 주장하는 기사를 읽었다. 벌써 25년도 더 된 일이라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지는 반도체 기업을 살리기 위해 유형자산의 감가상각 내용연수를 지금보다 더 늘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나는 해당 기자에게 이메일을 썼다. 당시 기사에 달린 다른 독자의 댓글도 내 생각과 비슷했다. 내 질문의 요지는 두가지였다. 첫째, 감가상각 내용연수 변경은 장부상 이익을 바꿀 뿐 기업 가치의 본질인 '현금흐름'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둘째, 통상적으로 국가는 산업 육성을 위해 세금을 덜 내게 해주는 '가속상각(내용연수 단축)'을 지원하지, 세금을 더 내게 만드는 내용연수 연장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용연수 연장이 어떻게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지 그 기자로부터 답을 듣지는 못했다.
과거의 이 기억을 다시 꺼낸 이유는 최근 글로벌 자본시장이 이와 정반대의 문제로 시끄럽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는 최근 빅테크 기업들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빅테크 기업들이 AI 칩(GPU) 등의 내용연수를 인위적으로 늘려 감가상각비를 줄이고, 이를 통해 이익을 부풀리는 회계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계학에서는 감가상각을 '자산 가치의 평가'가 아니라, '수익과 비용의 대응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즉, 자산을 사느라 지출한 돈(취득원가)을 그 자산이 돈을 벌어다 주는 기간(내용연수) 동안 나누어 비용으로 처리하는 절차다. 여기서 내용연수란 물리적 수명이 아닌, 기업이 경제적 효익을 기대할 수 있는 기간 즉 '경제적 내용연수'를 뜻한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AI 시장에서 2~3년이면 구형이 되는 GPU를 6년 동안 쓴다고 가정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신 칩은 학습(Training)에 쓰이지만, 구형 칩은 추론(Inference) 서비스로 용도를 변경해 충분히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가치 사슬' 논리다. 만약 이 논리대로라면, 초기에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실을 반영해 정액법 대신 '정률법(초기에 비용을 많이 인식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이는 기업 이익을 급감시킬 수 있어 더 큰 논란을 부를 것이다.
필자는 회계부정조사 전문가다. 그런데 회계부정조사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상황을 부정으로 단정하기는 그 근거 등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의 논쟁이 회계학의 토론장이 아닌, 자본시장에서 시작되었으니 자본시장의 관점 다시 말해 기업의 가치평가의 관점에서 조금 더 집중해 보자.
기업 가치 평가의 정석은 회계적 이익(Net income)이 아닌 현금흐름(Cash flow) 접근법이다. 마이클 버리 같은 전문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PER(주가수익비율) 같은 이익 기반 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본시장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치평가 지표에는 이러한 감가상각의 방법이나 내용연수의 가정으로 인한 회계적 이익의 편차를 보정하여 가치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들을 만들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대용 지표가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일 것이다. 내용연수를 늘리든 줄이든, 상각비를 다시 더해주는 EBITDA 수치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확실히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가진 기업을 평가할 때 EBITDA는 훌륭한 도구다. 이러한 지표를 통해 회계적 이익 속에 숨은 내용연수 변경의 효과를 어느정도 걷어내고 기업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산업혁명보다 더 거대한 'AI 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 격변의 시기에 단순히 회계적 이익이나 EBITDA 같은 한두개의 지표에 의존하는 것은 기업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크다. EBITDA는 당장의 현금 창출력은 보여줄지 몰라도, 신규투자를 위해 미래에 쏟아부어야 할 막대한 자본지출(CAPEX)은 보여주지 못한다. 내용연수가 늘어나 장부상 비용은 줄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기술경쟁이 멈추지 않고 생존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자본지출로 투자해야 하는 혁명의 시대라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않다.
결국 핵심은 '회계적 숫자'가 아니라 '현금'이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GPU 확보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지금, 현명한 투자자라면 이미 지출한 현금에 함몰되어 있기 보다는 기업이 현재 보유한 현금과 미래의 영업현금흐름으로 이 거대한 자본적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지출이 실제로 미래에 더 큰 현금으로 돌아올 것인지 냉철하게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i>“95%는 왜 AI 혁신에 실패하고 있는가- Shadow AI가 던지는 질문(下)”은 한경 CFO Insight 2월에 게재됩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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