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18일 17:4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막아서기 위해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가운데 법조계에선 5년 전 한진칼 경영권 분쟁 사태가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법원은 KCGI가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산업은행의 도움을 받아 경영권을 지켰다. 이 판례를 고려하면 이번 가처분 역시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한진칼과 고려아연이 처한 상황은 물론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상자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9일 MBK 연합이 제기한 고려아연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사건의 심문기일을 연다. 가처분 인용 여부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방어 가능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MBK 연합과 고려아연 양측 모두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은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정당한 경영상의 목적 없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번 가처분 재판의 쟁점 역시 이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2020년 12월 한진칼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사건을 이번 사건과 비슷한 판례로 보고 있다. 당시 조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KCGI는 한진칼이 산은을 대상으로 50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하자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하지만 법원은 "한진칼이 추진하는 유상증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및 통합 항공사 경영이라는 경영상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하며 현 경영진의 재배권 방어를 위해 신주를 발행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가처분을 기각했다. 고려아연 사건에 대입해보면 MBK 연합이 아닌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한진칼과 고려아연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가 더 우세하다. 우선 사안의 긴급성에서 차이가 난다. 한진칼 사건의 경우 아시아나항공 부실과 맞물려 거래 지연 시 국내 항공 산업 전반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거래 구조가 수개월만 지연돼도 딜 자체가 깨질 우려가 컸다. 반면 고려아연 사건의 경우 미국 제련소 설립 사업 자체가 5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제련소 착공 시점은 2027년이다. 유상증자가 반드시 연내에 이뤄져야 할 만큼 긴급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총 11조원의 투자금을 대규모 유상증자와 차입을 일으켜 단번에 확보한 뒤 이자 비용 부담을 지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는 평가다. 게다가 일반적인 합작법인(JV)과 달리 운영법인과 JV를 이원화해서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구조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최 회장 입장에선 내년 3월 정기 주총을 대비해 주주명부 폐쇄일 전인 올해 말까지 유상증자가 이뤄져야해 급하게 이사회를 열어 결정을 밀어붙였지만 법원에선 이를 절차적 정당성 훼손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고려아연은 월요일인 지난 15일 오전 7시 30분으로 이사회 일정을 정해놓고, 직전 금요일 오후 5시에야 이사회 소집 통보를 했다. 이사회를 소집하면서 구성원에게 핵심 자료도 사전에 제공하지 않았다.
대안 존재 여부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한진칼 사건에서 법원은 산은이 한진칼 지분을 인수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식의 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고려아연 상황은 다소 다르다. MBK 연합은 고려아연이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면 유상증자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상자의 성격도 다르다. 한진칼 사건의 경우 당시 법원은 정책 금융기관인 산은이 조 회장에게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자금을 댔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상자는 미국 정부 및 기업과 고려아연이 함께 설립한 JV로 내년 3월 정기 주총에서 최 회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 회장 측은 한진칼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경영상의 목적 달성을 위한 선택이라는 점을 법에서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핵심 광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미국 정부 및 기업과 손잡는 방안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이 원하는 투자 구조와 시점을 반영해줬을 뿐 경영권 방어 목적이 아니라는 게 최 회장 측 핵심 주장이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법원은 고려아연이 왜 이렇게 서둘렀는지, 기존 주주를 배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 무엇보다 연내 유상증자가 마무리될 필요성이 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라며 "이를 통해 이번 유상증자가 경영상의 목적 달성이 아닌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보인다면 가처분이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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