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단계까지 3~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중국이 EUV 기술을 구현하는 데 최소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봤다. 지난 4월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이 이 기술을 개발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ASML도 “우리 기술을 복제하려는 시도가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시험 중인 이 장비를 활용해 2028년까지 실제 작동하는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젝트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들은 “보다 현실적인 시점은 2030년 전후”로 보고 있다.EUV 노광기는 반도체 기술 패권의 핵심으로 꼽힌다. 극자외선 빛을 이용해 사람 머리카락보다 수천 배 얇은 회로를 실리콘 웨이퍼 위에 새기는 장비다. 현재까지 EUV 기술을 상업적으로 확보한 기업은 ASML이 유일하다. 대당 가격이 약 2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ASML의 EUV 장비는 엔비디아·AMD가 설계하고 TSMC·인텔·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최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이다. ASML은 2001년 첫 EUV 시제품을 제작한 이후 2019년에야 상업용 칩 생산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 약 20년과 연구개발(R&D) 비용 수십억유로가 투입됐다.
미국은 중국이 EUV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차단해왔다. 2018년부터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해 ASML EUV 장비가 중국에 판매되지 못하도록 했고, 2022년에는 당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 반도체 장비 전반에 대한 포괄적 수출 통제를 도입하며 규제를 강화했다. 현재 ASML의 EUV 시스템은 대만, 한국, 일본 등 미국 동맹국에만 공급되고 있다. ASML은 “중국 고객에게 EUV 장비가 판매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중국은 D램과 낸드, 파운드리,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이어 EUV 기술까지 자립화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미국을 자국 반도체 공급망에서 100% 배제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를 위해 ASML 출신 엔지니어를 대거 영입했다. 프로젝트 팀에는 최근 은퇴한 중국계 ASML 출신 엔지니어와 과학자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핵심 기술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직업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어 주요 영입 대상으로 꼽혔다. 중국은 이들에게 계약금으로 최소 300만~500만위안(약 42만~70만달러)을 제시하고, 주택 구입 보조금까지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력에는 중국 여권을 발급해 사실상 이중 국적을 허용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원 은폐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가짜 신분증을 제공하는 등 보안 조치도 철저했다.
인재 유출을 막기 어려운 구조도 이용했다.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은 ASML이 퇴직 직원 행보를 추적하는 데 제약을 두고 있다.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하더라도 이를 국경 넘어까지 집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네덜란드 정보당국은 4월 보고서에서 “중국이 서방국가에서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광범위한 첩보 프로그램을 활용해왔다”며 “서방 과학자와 첨단 기술 기업 직원 영입”을 경고했다.
중국은 구형 ASML 장비 부품을 얻기 위해 중고 시장도 적극 활용했다. 구형 장비에서 부품을 회수하거나 중고 시장을 통해 ASML 협력사 부품을 조달했고, 이 과정에서 최종 구매자를 숨기기 위해 중개 회사 네트워크가 동원되기도 했다. 국제 은행이 주관하는 경매를 통해 구형 반도체 제조 장비가 중국으로 유입됐으며, 올해 10월에도 중국 내 경매에서 ASML 노광기가 거래됐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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