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52억달러(약 1323조원). 미국의 올해 국방예산이다. 방위산업계에서는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부른다. 연간 국방비가 수년째 1000조원을 넘겨서다. 이는 군사비 지출 세계 2~10위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미국 방산 시장은 그만큼 거대하고 기준도 높다. 미국 시장을 뚫는 순간 엄청난 시장을 손에 넣을 길이 열릴 뿐 아니라 다른 나라 문턱도 쉽게 넘을 수 있는 ‘보증서’를 얻게 되는 셈이다. 미국 방산 시장의 높은 문턱을 K방산기업들이 하나둘 넘기 시작했다. 전투기 조종석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공급하면서 완제품 수출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ELAD는 여러 계기판에 분산된 정보를 조종석 앞 대형 화면에 담아 조종사들이 핵심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장비다. 필요한 정보를 한 화면으로 보면서 터치 기반 인터페이스로 명령을 전달할 수 있다. 최신 전투기 조종석 환경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운용 중인 F-15 전투기의 조종석 현대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계약으로 한국 방산 기술이 F-15 업그레이드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항공전자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넓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K방산기업들은 육·해·공을 망라한 미군 공급망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베스트셀러가 된 K-9 자주포를 앞세워 미 육군 자주포 현대화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사업은 실전 배치된 지 60년이 된 M109 자주포를 대체하는 사업이다. 내년에 화력 평가 테스트를 받는다. 한화는 10여 개 국가에서 검증한 성능과 신속한 조달, 미군 맞춤형 생산 계획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LIG넥스원은 2.75인치 유도로켓 ‘비궁’으로 미 해군의 구매 리스트에 올랐다. 비궁은 해안으로 고속 기습 상륙하는 함정을 정밀 타격하는 유도무기다. 내년 수출이 성사되면 국산 유도무기체계의 ‘첫 미국 진출’ 사례가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세운 ‘2027년 세계 4대 방산강국 진입’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년 200억달러(약 27조원) 이상 수주해야 한다”며 “미국 시장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 관문”이라고 말했다.
미군을 뚫는 건 단순한 매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미군이 사용한다는 것만으로 품질을 보증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한 번 채택되면 수십 년간 이어지는 유지·보수·정비(MRO) 시장 참여권도 따낸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지만 일단 뚫고 들어가면 장기간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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