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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기술 자립의 함정…특허 만료에도 못넘는 '영업비밀의 벽'

입력 2025-12-22 15:53   수정 2025-12-22 15:54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의 이면을 보면 언제나 첨단 기술이 있다. 첨단 기술을 권리화한 특허와 영업비밀의 중요성도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특허청이 지식재산처로 승격된 배경이다. 특허는 기술을 공개하는 대신 통상 출원일부터 20년간 독점권을 보장받는다. 이 기간이 끝나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영업비밀은 기술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로 관리하는 한 보호기간이 따로 없다. 그러나 비밀이 깨지면 더 이상 보호받기 어렵다. 산업스파이들이 노리는 기술이 대개 영업비밀이다. 지난 17일 지식재산처 업무보고에선 영업비밀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 원전 기술 분쟁을 언급한 대목에서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원천기술을 가져와 개량해 썼고 개발한 지 25년이 지났으면 (특허권이) 끝난 것 아니냐”며 “어떻게 20년이 훨씬 지났는데 (웨스팅하우스가) 한국 기업들에 횡포를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해당 건은 영업비밀로 분류돼 (보호)한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도 “영업비밀은 관리만 제대로 하면 무한정 보호된다”고 답했다.
◇ 원천기술의 그림자
가장 최근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갈등은 2022년 10월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과 한전이 체코 원전 사업 수주 과정에서 미국의 동의 없이 원전 기술을 제3국에 수출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보유한 원자력 기술이나 이로부터 파생된 설계·자료가 해외로 이전될 때 반드시 미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단순히 특허가 끝났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비공개 기술정보 수출 절차를 어겼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한수원과 국내 업계는 반발했다. 원자로냉각재펌프(RCP), 원전설계코드 등 핵심 설비를 국산화해 기술 자립을 달성했다는 설명이다. 한수원은 체코 수출용 APR1400에 국내 기술이 폭넓게 적용돼 있다고 강조해 왔다.

웨스팅하우스는 또 자사가 인수한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의 설계·해석 기술을 기반으로 한수원이 한국형 원자로(APR1400)를 개발했다며 이 기술정보는 공개 특허가 아니라 계약상 비밀 유지 조건이 붙은 자료였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원천기술을 개량해서 썼는데 왜 문제냐”는 지점은 바로 여기서 충돌한다. 특허 기술을 참고해 개선하는 것과 비공개 계약 기술을 수출 과정에서 활용하는 것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분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원천기술’의 범위가 넓고 해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APR1400은 가압경수로(PWR) 계통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업계에서는 웨스팅하우스가 1950~60년대 세계 최초로 개발한 PWR 기술을 ‘근본 기술’로 보고 있다. 미국은 자국 기술이 포함된 원자력 제품을 제3국에 수출할 때 해당 기술 보유자(기업)의 동의와 정부 승인을 필수로 규정한다. 한국이 독자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미국이 원천기술 소유권을 근거로 언제든지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 SMR도 사태 재연 가능성
한수원은 지난 1월 체코 원전 수출 본계약을 앞두고 50년간 유효한 협약을 체결하며 웨스팅하우스와 분쟁을 일단락했다. 이 협약에는 향후 한국이 원전을 제3국에 수출할 때 웨스팅하우스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기술 검증 절차를 거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조항이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수원, 삼성물산, 현대건설,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많은 기업이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SMR은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할 차세대 원자로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SMR을 개발해도 웨스팅하우스가 기술 검증 후 영업비밀 침해라고 주장하면 APR1400과 유사한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한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단장은 지난 9월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특허 분쟁을 피할 수 있도록 기술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대욱 한수원 사장 직무대행도 1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특허권 이슈를 제거하면서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원전 기술은 단순히 설계도면이 아니라 제어 소프트웨어, 운영 매뉴얼 등 복합적인 고난도 지식 집합체”라며 “원전 운용 기간도 40년 이상으로 긴 만큼 특허보다는 핵심 기술을 확보한 뒤 영업비밀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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