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조차 단 한 편밖에 내놓지 못하면서 투자, 제작, 배급 등 한국 영화산업의 밸류체인이 붕괴 지경에 다다랐다는 우려가 커진다.

관객을 극장으로 이끈 동력이 한국 영화가 아니라 외화이기 때문이다. 영진위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누적 관객 상위 5편 중 한국 영화는 ‘좀비딸’ 한 편뿐이다. 지난해 상위 1~5위에 외화가 단 한 편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낮아진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천만영화 실종’ 사태로 요약된다. 올해 극장가에서 1000만 명을 동원한 영화는 한 편도 없다. ‘도둑들’(1298만 명)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 명)가 개봉한 2012년부터 한국 영화는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매년 천만 영화를 배출했다.
올해 한국 영화는 적잖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기대작이 모두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해외 호평과는 별개로 국내에선 292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제작비 312억원을 쏟아부으며 여름철 ‘텐트폴’로 꼽힌 ‘전지적 독자 시점’의 관객은 추산 손익분기점의 6분의 1 수준인 106만 명에 불과했다. 한 극장 관계자는 “올해는 한국 영화의 존재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고 말했다.
꾸준히 회복 곡선을 그리는 해외 영화 시장과 비교하면 위기는 더 선명해진다. 한국 영화에 밀려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은 일본은 영화 ‘국보’가 1200만 명을 동원하며 23년 만에 실사 영화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각에선 위축된 시장 환경에 맞춰 천만 영화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검증된 감독과 스타 배우를 앞세워 대형 상업영화를 만드는 대신 극장 관람 수요를 유지하면서 손익분기점 부담을 낮추는 ‘중박’ 영화 제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가 올해 100억원 규모로 신설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 규모를 내년에 200억원으로 두 배 키우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내수에 초점을 맞춘 한국 영화가 해외 판로 확대에 나설 시기가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국내 개봉 전 해외 선판매로 170억원의 제작비를 회수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1월 개봉한 ‘검은 수녀들’도 인도네시아에서 관객 100만 명을 동원하는 등 해외 판매로 애초 250만 명 수준이던 손익분기점을 160만 명으로 낮췄다.
영화계 관계자는 “전체적인 극장 관객 볼륨이 줄어든 것을 인정하고 500만~600만 명 사이즈의 중예산 영화 기획·투자를 키워야 한다”며 “최근 한국 영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판매되는 만큼 내수용을 넘어 글로벌 상품으로 만들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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