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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복 KIER 에너지ICT연구단장 "ESS, 저장장치서 핵심 전력망 자원으로 진화"

입력 2026-01-03 06:00  

[한경ESG] 커버 스토리1 - 에너지 저장의 미래
인터뷰 ① 백종복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에너지ICT연구단장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이제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전력망을 지키는 핵심 자원이 될 것이다.”

백종복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ICT연구단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ESS의 역할도 바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ESS는 남은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설비로만 인식돼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단순 저장을 넘어 전력망의 주파수와 전압을 안정시키고, 정전 시에도 전력망을 다시 세우는 ‘계통 자원’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주목받는 ‘그리드포밍(Grid-forming)’ 인버터 역시 이런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이른바 전력망이 흔들릴 때 ESS가 스스로 전압과 주파수를 형성해 중심을 잡아주는 기술이다.

백 단장은 “재생에너지가 늘수록 전력망은 더 민감해지고, ESS는 주파수 조정과 전압 유지, 블랙스타트(자체 기동)까지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산업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저가 배터리를 앞세운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있지만, 한국이 단순한 단가 경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백 단장은 “한국은 배터리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스템 통합과 운영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을 결합한 ‘계통 솔루션’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ESS 경쟁력은 배터리 용량이나 가격이 아니라 데이터와 제어 등 이를 담아내는 시장 설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의 승자는 ‘배터리 제조사’가 아닌 ‘운영 솔루션 기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장기적으로 ESS 산업의 핵심 변화는 ‘플랫폼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가정과 빌딩, 공장, 전기차 배터리 등 다양한 자원이 가상발전소(VPP)로 묶여 함께 운영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배터리 크기가 아니라 언제 충전하고 언제 방전할지를 결정하는 운영 기술로 부각될 전망이다.

하나의 ESS가 여러 역할을 하고 보상을 받는 구조일수록 민간투자도 확대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제도 개선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ESS 인증은 화재 안전성 중심이지만, 실제 전력망에서의 전압·주파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까지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력망 안정에 기여한 만큼 보상하는 시장 구조 역시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ESS의 경쟁력은 배터리를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전력망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하느냐가 핵심 포인트로 지목된다.
다음은 백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 최근 ESS 운영 기술 성과나 연구단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연구단은 ESS를 단순 저장장치가 아닌 전력망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운영·진단·유연성 기술을 함께 고도화해왔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과 전력 변환 장치(PCS)를 통합하고, AI 기반의 건전성 예측 기능을 탑재한 일체형 전력 모듈을 개발해 안전성을 크게 높였다. 또 스마트 인버터와 태양광·ESS·슈퍼캐퍼시터를 연계한 이종자원 기반 그리드포밍 인버터 핵심 기술을 확보해 국내 기업으로의 기술이전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성과는 재생에너지 수용성 확대와 전력망 안정성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 현장에서 체감하는 표준·인증 체계의 한계는 무엇인가.

“가장 큰 한계는 표준·인증이 여전히 화재와 절연 중심의 ‘정적 시험’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전력망에서는 전압 강하, 주파수 변동, 고출력 운전 시 열화 같은 동적 변수가 핵심이다. 계통 사고 시 ESS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장기 운전에서 성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동적 성능 기반 인증 체계로 전환이 필요하다.스마트 인버터 상호운용성 문제와 그리드포밍 ESS에 대한 공인 인증 기준 부재도 시급한 과제다.”

-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한 한국의 ESS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속응성 주파수 제어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고 발생 시 밀리초 단위로 반응하는 주파수 응답 기술과 대규모 운영 경험은 한국의 강점이다. 다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매우 높은 ‘약한 계통’ 환경에서의 운영 경험은 이제 고도화 단계에 있다. 관성 제공을 위한 그리드포밍 기술은 아직 실증 단계이며, 지금은 기준 수립과 국산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

- 계통형 ESS 개발의 핵심 기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핵심은 장비가 아니라 ‘지능형 계통 자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드포밍 기술을 통한 관성 응답과 블랙스타트, 다중 지원 간 협조 운용 기술, AI 기반 계통 진단과 예측이 핵심이다.”

- ESS 산업 발전의 가장 큰 기술적 병목은 무엇인가.

“안전성과 수명 예측의 불확실성이다. ESS는 여러 모드로 동시에 운전할수록 열화가 비선형적으로 가속화될 수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운영이 보수적으로 변하고 경제성도 떨어진다. 장기적으로는 흐름전지, 나트륨전지, 전고체 배터리 등 기술이 시장 구도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미래 승자는 배터리 제조사가 아니라 운영 솔루션 기업이 될 것이다.”

- ESS 보급 확산을 위한 핵심 경제 조건은 무엇인가.

“LCOS를 낮추는 것과 함께 시장 기반 보상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ESS가 과발전 흡수, 피크 대응, 주파수 조정 등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각각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예비력, 주파수 조정, 가상 관성 제공 같은 계통 기여에 정당한 가격을 매기는 보조 서비스 시장이 중요하다. 초기 비용보다 생애주기 전체 비용을 줄이는 접근이 필요하다.”

- 한국형 전력 시장 제도는 ESS 기술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결국 시장 설계가 기술 수준을 결정한다. 과거 SMP+REC 중심 구조는 사실상 고성능 ESS에 투자할 유인을 만들지 못했다. 반면 보조 서비스와 실시간 시장에서 ESS의 성능과 신뢰성을 평가하면, 기업들은 하드웨어를 넘어 운영 기술에 투자하게 된다. 정책 변화는 기술발전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전망이다.”

- 연구단이 현재 가장 집중하는 연구 분야는 무엇인가.

“그리드포밍 인버터와 분산 자원 관리 시스템이다. 실제 하드웨어를 실시간 시뮬레이션과 연결해 검증하는 PHILS와 EMT 기반 해석 기술을 결합해 실증 중심의 기술 패키지를 구축하고 있다. 또 AI 기반 DERMS와 에너지 AI 에이전트 기술을 통해 분산 자원을 유연하게 관리하는 운영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 한국 ESS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전략은 무엇인가.

“단가 경쟁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솔루션으로 가야 한다. 고규제 시장을 겨냥한 패키징과 SI 기술, 대용량 PCS와 GFM 인버터 같은 전력 전자 기술, 그리고 전력망 해석 기반의 운영·유지보수 서비스를 결합한 토털 솔루션이 필요하다. 한국의 목표는 배터리를 파는 나라가 아니라 전력망 문제를 해결해주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 정부와 지자체 정책에서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기술개발부터 실증, 시장 정착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지원이 필요하다.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장주기 원천기술과 검증 인프라에 집중하고, 금융지원과 공공 실증을 통해 초기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안전기준 역시 규제가 아니라 기술 경쟁력이 될 수 있도록 고도화돼야 한다. ESS가 제공하는 가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보상될 때 민간 혁신도 본격화될 것이다.”

이미경 한경ESG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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