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달력의 마지막 장도 끝자락이다. 12월의 마지막 주가 되면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되감기 해본다. 희한하게도 좋았던 기억보다는 아쉬웠던 순간, 뼈아픈 실패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마음에 박힌다. 사람의 본능이 그렇다. 하지만 실패가 마음의 ‘쓴뿌리’로 남을지, 내일의 ‘자양분’이 될지는 그 기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우리는 흔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듣지만, 실패의 고통 속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 역시 머리로만 알던 이 평범한 진리를, 지난해 트레일러닝이라는 처절한 육체적 경험을 통해 비로소 온몸으로 깨닫게 됐다.
당시 나는 생애 첫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험난한 산악 코스 38㎞를 제한 시간 10시간 안에 완주하겠다는 목표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내 기록은 10시간1분32초. 고작 1분32초 차이로 실격이었다.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허탈함과 분노를 느꼈다. 10시간 넘게 뛰었던 산길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오르막에서 조금만 더 뛸걸’ ‘거기서 1분만 덜 쉬었더라면…’ 후회가 밀려오자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다. 샤워장에서 차가운 물줄기를 맞으며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정신을 부여잡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관점을 ‘시간’에서 ‘완주’로, ‘실격’에서 ‘도전’으로 바꿔 의미를 부여하자 패배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뜨거운 성취감과 자신감이 차올랐다. 실격이라는 성적표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자 나는 패배자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최선을 다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냉혹한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동시에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의미를 부여할 때 패배감조차 성취감으로 바뀔 수 있음도 깨달았다. 감정이 치유되니 냉정한 복기가 가능해졌고, 부족함을 보완한 덕분에 이후 대회에서는 성공적으로 완주할 수 있었다. 뼈아픈 실패가 성장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우리 인생 레이스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해 동안 누구에게나 아픈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를 그저 실패나 상처라는 이름으로 남겨둔다면 내년을 살아가는 데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고통의 시간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할 때 비로소 내일의 성공을 위한 가장 확실한 거름으로 변모한다.
진정한 송구영신(送舊迎新)은 단순히 달력을 바꿔 다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을 성장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감사함으로 떠나보내는 마음의 의식이다. 올 한 해, 당신을 힘들게 한 모든 순간에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자. 비록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그 치열한 시간을 견뎌낸 당신은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 스스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새로운 출발선에 설 준비를 하는 연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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