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한 현장에서 생명을 살리면서 정작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은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소방공무원이 많습니다. 이들의 헌신에 보답하고 지역 의료공백을 메우는 건실한 공공의료기관을 만들겠습니다.”
곽영호 국립소방병원장은 지난 24일 첫 시범 진료를 기념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18년 7월 충북 음성으로 후보지가 정해진 뒤 오랜 기다림 끝에 대한민국 소방 영웅들을 위한 첫 행사를 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충북혁신도시에 세워진 이 병원은 내년 6월 정식 개원을 앞두고 이날부터 소방·경찰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국내에 소방공무원 진료를 전담하는 의료기관이 문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예산 2049억원이 투입된 이 병원 운영은 서울대병원이 맡았다.
곽 병원장은 1985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로 근무하며 생사를 오가는 이들의 생명을 지켜왔다. 그는 2022년 국립소방병원의 초대 원장직을 선뜻 수락했다. 소방공무원의 생명은 물론 종합병원이 없어 불편을 겪던 충북 음성·진천·진평·괴산 지역 주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이 병원 설립 취지에 공감해서다.
곽 병원장은 “소방관들이 출동해 보는 장면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데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잘못돼 겪는 충격도 상당하다”고 했다. 그는 “매일 출근할 때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오는 게 일상’이라고 하는 소방관이 많다”며 “혹여나 출동 중 사고를 입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고 했다. 이렇게 봉사하는 삶을 사는 소방관들에게 보답하는 병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소방공무원들은 근무 특성상 화상 사고나 근골격계 질환 등에 많이 노출된다. 외상후스트레스성 장애(PTSD)처럼 정신과적 문제를 호소하는 일도 많다. 병원은 이를 고려해 화상과 재활, 정신건강, 건강증진 등의 분야를 특화했다. 곽 병원장은 “정신건강의학과는 비대면 진료를 활성화해 화상 진료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이 화상을 입으면 바로 헬리콥터로 이송할 수 있도록 지역 소방본부별 헬기 착륙 훈련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설립 취지에 공감한 기업들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충북지역 첫 고압산소 치료 장비를 기증했다. 최대 16명이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대형 장비다. 로봇 재활을 위한 상·하지용 치료기, 특수 구급차도 두 대 기증했다. 30억원 규모다. KB손해보험도 병원 내 휴게공간 조성을 맡았다.
이날 이뤄진 첫 시범 진료 환자는 2022년 소 포획 활동 중 4m 절벽으로 추락해 다발성 골절상을 입었던 김홍걸 충주소방서 소방경이다. 동네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아온 그는 “서울대병원에서 운영하는 데다 의료진도 친절해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 진료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음성=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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