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직접 개발한 ‘기본 설계도’(아키텍처)를 토대로 제조한 GPU를 2027년께 나올 차세대 AP에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자체 개발한 아키텍처를 활용해 GPU를 설계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 엔비디아, AMD, 인텔, 퀄컴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삼성이 내년 내놓는 갤럭시S26용 AP ‘엑시노스 2600’에는 미국 AMD의 아키텍처를 토대로 설계한 GPU가 들어간다. GPU는 크게 엔비디아가 장악한 서버용 제품과 퀄컴, AMD, 애플 등이 과점하고 있는 모바일용 제품으로 나뉜다. 삼성이 이번에 개발한 아키텍처는 이 가운데 모바일용 GPU다.
삼성이 모바일용 GPU 내재화에 나선 것은 AI 시대를 맞아 기기 내에서 그래픽과 AI 연산 작업을 하는 GPU의 중요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GPU는 여러 작업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병렬연산’의 장점을 활용해 AP 안에서 동영상 재생, 이미지 생성 등의 작업을 도맡는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갤럭시폰 등에 최적화된 ‘맞춤형 GPU’를 적기에 공급받기 위해 GPU 개발에 나선 것”이라며 “GPU의 기본 설계도인 아키텍처 기술을 확보한 만큼 삼성의 정보기술(IT) 기기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독자 GPU 아키텍처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AI 반도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반열에 오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삼성은 자체 개발한 GPU가 들어간 엑시노스 AP를 향후 스마트글라스, 자율주행차용 소프트웨어, 휴머노이드 등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메모리·파운드리 이어 주문형 반도체 사업 '본궤도'로
파격적 대우에는 이유가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이미지 처리, 게임 구동 등 스마트폰에서 보조 역할에 그치던 GPU가 생성형 AI를 구현하는 ‘주인공’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핵심 기술을 외부 업체에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삼성은 미국 AMD와 기술 제휴에 나섰고, 최근 GPU 기술의 핵심인 ‘밑그림 설계’(아키텍처) 기술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자체 개발한 GPU를 2027년 나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2800’(가칭)에 적용하기로 했다.
삼성이 GPU 내재화에 나선 것은 우선 범용 GPU로는 갤럭시 시리즈 등 삼성 정보기술(IT) 제품의 AI 기능을 온전히 구현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범용 GPU는 그 자체로 성능이 뛰어나도 여러 브랜드와 기기에서 작동해야 해 삼성 소프트웨어에 ‘최적화’하기 어렵다. 기능이 여러 작업에 맞춰진 탓에 칩 구동 과정에서 전력 소모가 필요 이상 많아지고, 연산 능력도 떨어진다.
자체 GPU를 확보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엔비디아의 서버용 AI 가속기를 사용하던 구글, 아마존, 메타 등이 AI 가속기 내재화에 나선 것과 같은 이유다. 모바일 GPU는 배터리로 구동되기 때문에 ‘저전력’은 기본이고 ‘실시간 이미지 처리’ 등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이미지처리, 게임 구동, AI 연산 등 다양한 기능을 쌀알 2~3개(10~30㎟) 크기의 칩에 담아내야 한다.
삼성은 콘솔(게임 전용 컴퓨터), 데스크톱 등 중대형 디바이스에 들어가는 GPU부터 차근차근 개발했다. 이후 저전력, 소프트웨어 최적화를 달성하며 GPU 내재화 속도를 올렸다.
삼성은 AI폰을 시작으로 자체 GPU 칩을 적용한 AP를 삼성이 그리는 AI 생태계의 주요 플랫폼인 스마트글라스, 자율주행차용 인포테인먼트시스템, 휴머노이드 등에 공급할 계획이다. 실적을 쌓은 뒤엔 고객사의 주문을 받아 ‘맞춤형 칩’을 만들어주는 주문형반도체(ASIC)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제2의 브로드컴’ ‘제2의 마벨’이 되는 것이다.
업계에선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와 파운드리에 이어 상대적으로 약했던 설계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삼성 파운드리는 지난 7월 테슬라로부터 22조원 규모 AI 칩 공급 계약을 따낸 데 이어 10월 애플과 최신 이미지센서 공급 계약까지 체결했다. 메모리 분야에선 최근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차세대 제품인 HBM4도 양산 준비를 마치고 엔비디아 ‘품질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 파운드리에 이어 팹리스까지 시스템반도체 사업 정상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며 “GPU 독자 개발 성공은 시스템LSI사업부가 세계적인 팹리스 반열에 오르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의명/강해령/황정수/김채연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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